파란눈 사위의 장모 사랑

Howth와 Malahide의 봄날에 나눈 대화들

by Maya Lee

"어머님이 여기 같이 오면 좋아하실까?"
요즘 존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6월 중순에 엄마가 우리를 보러 아일랜드에 오시기로 확정하면서 나와 존의 마음은 조금씩 바빠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주무실 방에 놓을 서랍장과 램프도 사야하고, 집안 여기저기 손봐야 할 곳들도 좀 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처음 와보는 딸네 집이 깔끔하고 단정한 엄마 눈에 난민센터처럼 보일까봐 우린 벌써부터 걱정이 많다. 하지만 걱정은 10% 정도, 우리는 90%의 설레는 기다림으로 이런저런 계획을 구상 중이다. 사실 나보다도 존이 더 들떠 있는 눈치다.
"어머님 도착할 때 포르쉐 같이 근사한 차를 렌트해서 공항에 마중 나가는 건 어때?"
당연히 농담인 줄 알고 쳐다본 그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 난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존이 휴무였던 지난 금요일, 말라하이드로 향하는 차 안에서였다. 모처럼 날씨가 화창해, 영화관에 가는 대신 바람을 쐬러 가는 쪽으로 금방 계획을 바꾼 뒤였다.
"무슨 포르쉐야, 포르쉐는! 좋아하시기는 커녕 그런데 돈 낭비했다고 엄청 혼만 날껄?" 내 말에 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그때까지 조금 큰 차를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우리 깜찍한 피아트의 뒷좌석이 그리 편해 보이진 않았지만, 엄마가 그런 데 까다로운 분은 아니었다. "걱정마. 우린 집청소만 깨끗이 해놓으면 돼."

금요일 오전의 도로는 넉넉하고 한가로웠다. 하긴, 차가 많이 막힐 때도 거북이 걸음을 할 지언정 완전히 멈춰 서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한국에 비하면 여긴 운전자들의 천국이다. 그래서 차가 멈추지 않고 계속 가고 있는데도 존이 차 막힌다고 짜증을 내는 게 신기하다. 선글라스를 썼는데도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시리게 부셨다. 보기엔 여름햇살 같은데 창문 틈새로 넘어와 뺨에 닿는 바람은 여지없이 쌀쌀했다.
말라하이드로 가는 해안도로는 호스로 가는 길과 함께 존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이브 코스다. 더블린이나 브레이에서 출발하면 비슷하게 40분 정도 걸리는데, 중간에서 호스와 말라하이드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만약 다트로 가려면 말라하이드 행인지 호스 행인지 목적지를 확인하고 타야한다.
말라하이드와 호스는 더블리너들의 주말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있는 곳인데, 지도상 이웃하고 있지만 분위기는 제법 다르다. 말라하이드가 800년 넘은 아름다운 고성과 넓은 공원, 산책하기 좋은 해변이 있어 단정하고 정적인 느낌이라면, 호스는 수많은 낚시배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와 이를 둘러싼 작은 어촌마을의 생동감과 바다냄새가 그대로 느껴진다. 배 구경으로 힐링하는 존 때문에 호스를 더 자주 찾는 편이지만, 어느 곳을 더 좋아한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보통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선택하고, 욕심이 나면 오늘처럼 부지런히 두 곳을 다 섭렵한다.

사실 존과 나는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성이나 공원보다 말라하이드 타운 자체를 더 좋아한다. 아기자기한 로컬 카페와 레스토랑, 숍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고, 호수처럼 잔잔한 항구와 바람이 불 때마다 합창하듯 종을 울리는 작은 요트들, 이를 마주보고 타원형으로 늘어선 집들이 한 프레임 안에서 만들어내는 그림 같은 풍경은 아무리 오래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물론 존과 내가 '아일랜드 최고'라고 자평하는 인디언 레스토랑에서 커리를 먹는 순서도 빼놓을 수 없다.
"어머님이 이 레스토랑도 좋아할까?"
존은 언제나처럼 새우커리와 쇠고기커리 중에 고민하다 새우커리를,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감자가지커리를 시켜 흡입하듯 먹고 있었다.
"커리 먹으면 치아가 누렇게 착색된다고 언젠가부터 잘 안드시지만...원래 커리 좋아하셨으니 여기도 좋아하실 거야."
"흠..." 잠시 고민스런 신음을 뱉어내던 존이 갑자기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그거 기억나? 어머님이랑 서울 시내에서 우연히 처음 마주쳤을 때 말야. 정말 기적 같았는데. 아니, 그건 분명 기적이었어."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잊지못할 사건이었으니까. 2012년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은 광화문 거리. 해저물녘 가로수에 걸린 크리스마스 장식등이 빛을 더할 때,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더랬다. 유학생비자가 만료돼 한국에 돌아와 있던 나를 만나러 존이 기타를 팔아 한국행 티켓을 샀을 때, 우린 이미 둘만의 약혼식을 올린 상태였다. 그래서 당시 한국행은 사실상 한국의 관습을 따라 '부모님 허락을 받는' 절차를 밟기 위한 목적이 컸다. 완강히 반대하던 부모님도 '이젠 어쩔 수 없다'며 포기했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셨다. 게다가 우리는 바로 전날밤 엄마한테 "이번 주 토요일 저녁에 삼촌이랑 이모들 만날 건데 이참에 너네도 인사드리러 와라"는 전화통보를 받고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눈발이 점점 더 굵어지며 거리와 나뭇가지에도 조금씩 눈이 쌓이고 있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 쪽으로 큰 길을 막 건넜을 때,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난 얼음처럼 멈춰서 버렸다. "맙소사...엄마야." "하하, 누구 말하는 거야?" "저기 버스정류장, 연두색 코트 입고 베레모 쓴 여자." "거짓말!" "나도 믿기지 않는데 진짜야." 그제서야 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가 가리키는 여자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가서 인사하자." "그래야..겠지?" 나는 반가움을 압도하는 어색함을 밀어내며 존의 손을 잡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100미터 같이 느껴지는 10미터. "엄마!" 슬로우무비처럼 엄마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어, 네가 왠일이니? 엄만 시네큐브에서 영화 보고 집에 가는 길이야." "아, 그렇구나....참, 엄마, 여긴 존. 존, 인사 드려. 우리 엄마." 존이 먼저 어설픈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며 악수를 청하자, 그제서야 존을 발견한 엄마가 깜짝 놀란 눈빛으로, 하지만 정중하고 우아한 몸짓으로 인사를 받았다. "아, 그래요! 만나서 반가워요. 이렇게 추울 때 와서 고생하네. 그럼 토요일 저녁 때 만나요." 그때 엄마가 탈 버스가 도착했고, 엄마는 버스에 오르며 몸을 돌려 우리를 한번 더 바라보았다. "네 엄마 지금 웃고 계신 거 맞지?" "맞네, 걱정만큼 출발이 나빠 보이진 않네..."
존은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종종 꺼내곤 한다. 그때 나의 엄마를 인구 10만명이 넘는 서울 한복판에서 마주칠 기적 같은 확률과, 그날의 만남이 자기의 긴장감을 얼마나 많이 누그러뜨리고 용기를 주었는지에 대해.




커리를 먹은 다음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타고 다음 목적지인 호스로 향했다. ´Scenic road'라 적힌 간판을 따라 해안도로로 접어들면, 바다를 보며 가로수가 예쁜 길을 달릴 수 있다.
"호스도 좋아하실까? 호스 빌리지 같이 산책하고 싱싱한 해산물 요리도 사먹으면 좋을텐데, 그지? 참, 피쉬 앤 칩스도 아이리쉬 전통음식이니 한번 드셔봐야 할 텐데, 튀김은 건강에 안 좋다고 안 드신다 했지?"
"평소 튀긴 음식을 안드시긴 하는데...음, 그래도 한번쯤 먹어보고 싶어하시지 않을까?"
아직 엄마가 오실 날은 저만큼 앞인데, 우린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 식의 구체적인 대화를 너무나 진지하게, 그것도 주인공도 없는 자리에서 하고 있었다.
나는 장모를 친엄마처럼 가깝게 생각하는 존이 참 고맙고 사랑스럽다. 항상 엄마의 안부를 묻고, 내게 전화 드리는 걸 게을리하면 빨리 전화해보라고 재촉하고, 엄마가 아일랜드에 오시는 날을 나보다 더 손꼽아 기다리는 그를 보면, 한국의 일반적인 사위의 모습과 너무 달라 신기하다. 생각해 보면, 한국과 다른 유럽의 가족문화, 개인적으로 격 없는 존의 성격, 오히려 말이 안 통하기 때문에 또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 적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엄마와 존 사이의 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난 건 우리가 결혼 후 처음으로 함께 한국을 방문해 부모님 댁에 머물 때였다. 첫날 저녁 "사위가 결혼하고 처음 집에 오면 씨암탉을 잡아주는 거"라며 정성스레 만들어주신 닭백숙을 받아들고 어쩔 줄 몰라하던 존이 국물까지 남김 없이 먹어치운 후 "아무도 나를 위해 이렇게 상을 차려준 적이 없었어"라고 내 귀에 속삭였을 때, 난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의 모습에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따뜻한 보살핌을 그리워했을 어린 소년이 보였다. 더 놀라운 건 엄마의 변화였다. 처음엔 한달이나 외국사위와 한 집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엄마. 사위에 대한 예의로 저녁상을 차려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셨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한 눈치였다. 그런데 아침마다 까치머리에 반바지 차림으로 거실에 나와 큰 소리로 "굿모닝!" 인사를 하고, 저녁 땐 드라마 보는 엄마 옆에 앉아 같이 TV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파란눈 사위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일주일쯤 지난 어느날, 엄마가 수년 전 영국과 아일랜드 여행을 갔을 때 쓴 여행일지를 존에게 보여주며 아일랜드에 대해 열심히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시는 걸 봤을 때, 난 또 한번 콧등이 시큰해졌다. 내가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존과 엄마의 모습이었다. 어느 순간 벽이 허물어진 후로 존과 엄마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존은 매일아침 나에게 배운 새로운 한국말을 엄마한테 써먹으며 점수를 땄고, 엄마는 노인복지관에서 배운 영어실력을 총동원해 존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당시 아빠가 요양병원에 의식 없이 누워계실 때였는데, 존도 늘 같이 병원에 가서 아빠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곤 했다. 그렇게 한달이 흘러 존이 나보다 조금 먼저 아일랜드로 돌아가던 날, 엄마는 존을 배웅하며 두 팔 벌려 안아주셨다. 아들딸한테도 주신 적 없던 '빅 허그'였다. 존도 빅 허그로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다음날 저녁, 엄마가 거실에서 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내 방에서 우연히 엿들었다. "그래, 어제 우리 사위 먼저 돌아갔잖아. 아니...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던데? 외국사람이라 그런가, 순수한 면이 있어서 은근히 귀엽더라구!"

겨우 영상 4~5도에 머무는 차가운 날씨였지만, 항구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개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고 붉은 글씨로 쓰인 경고문 앞에서 관광객들은 아랑곳없이 식빵조각을 던져주고 있었고, 더 이상 먹이를 잡으러 먼 바다로 나가지 않는 늙고 살진 물개들이 주변을 맴돌며 얼굴이 내밀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는 모처럼 햇살을 즐기려는 사람들 무리에 합류해 빨간 등대가 있는 곳까지 긴 산책을 했다. 펍과 레스토랑들이 모여 있는 빌리지로 돌아왔을 땐 바람을 오래 맞은 손과 뺨이 얼얼했다. 몸도 녹이고 배도 채울 겸 한 펍에 들어갔는데, 막상 훈훈한 실내에 들어서니 시원한 맥주가 땡겼다. 우리는 창쪽을 향해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며 설핏 기운 해의 기다란 등자락을 함께 바라보았다. 항구의 배들과 바다, 하늘의 실루엣이 부드러운 저녁햇빛 속에서 아름답게 빛났다. "어머님이 술 안드시는 건 알지만 그래도 기네스는 한잔 하시겠지?" 4년 전 눈 오는 겨울날 광화문 사거리에서 걸린 마법에 여전히 빠져있는 표정으로, 존이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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