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조카의 방문을 기다리며
아일랜드답지 않게 일주일 내내 날씨가 좋더니,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대표 휴양지인 이비자와 기온이 똑같았다'는 며칠 전에는 날씨가 덥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꽤 들었으니, 며칠쯤 다시 아일랜드다워진다고 해도 나쁠 건 없겠지. 물론 나에게는 아직 충분히 더운 날이 없었으므로, 이 비가 지나간 후 진짜 여름 맛을 볼 수 있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물론 20도만 넘으면 더위에 허덕이는 존에게는 비밀.
엄마가 아일랜드에 오실 날이 딱 일주일 남았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계속 미뤄뒀던 집청소를 어제야 시작했고, 냉장고와 샤워기 등 몇몇 손봐야할 집기 수리를 위해 존의 친구이자 핸디맨인 폴과 약속을 잡았다. 나는 엄마와 둘이 떠날 스위스여행을 위해 예약한 숙소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머릿속으로 가져갈 옷가지들을 생각한다. 준비성 철저한 엄마는 벌써 본격적인 짐꾸리기를 시작하셨다. 생각보다 짐이 많아진다고 걱정하시기에 '나한테 뭐 가져다주려고 하지 말고 엄마 짐만 싸시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너 갖다주려고 열무김치 담가놓았는데, 도저히 짐 무게 때문에 못가져가겠네''라는 카톡문자에는 얼른 대답이 안나왔다. 결국 꿈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엄마의 열무김치를 포기, '네'라는 답글과 함께 눈물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다음번 한국 갈 때 꼭 먹어야할 음식 1순위는 열무김치다.
엄마의 아일랜드 방문과 맞물려 우리의 계획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친언니의 열살짜리 아들이자 나의 첫조카 채환이가 아일랜드에 와서 한달간 머물기로 한 것이다.
'엄마 거기 계실 때 채환이 아일랜드에 보내도 돼? 혹시 채환이가 단기로 다닐 수 영어학원이 있을까? 이모 보러 가고 싶다고 엄청 조르네.'
이렇게 조금 뜬금없는 언니의 카톡문자를 받은 건 2주 전. 그런데 연달아 온 문자에 가슴이 철렁했다. '사실은 네 형부가 아파서 7월중에 수술받을 꺼 같은데 채환이까지 돌보려면 너무 정신없을 것 같아. 채환이 보내놓고 형부 간호에만 전념하고 싶어서.'
형부가 아파서 수술을 하신다니 어디가 얼마나? 당장 질문을 쏟아놓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엄마께 먼저 전화를 했다.
"네 형부가 식도암이랜다...세상에. 벌써 2기를 넘어섰다는데 어쩌면 좋니... 네 언니도 불쌍하고 사위도 불쌍하고, 어이휴..."
엄마의 눈물 젖은 긴 한숨소리를 따라 내 가슴이 방망이질치고 있었다. 아빠가 1년반의 병원생활 끝에 돌아가신 후, 한동안은 가족중 누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지 않게 될 줄 알았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형부가... 그것도 암이라니.
언니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넣었다. 다행히 들리는 목소리는 걱정한 것만큼 어둡지 않았다. 형부는 연세세브란스에서 1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퇴원해 집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항암치료약이 너무 세서 맥을 못추고 있지만, 자신은 꼭 나을 거라고 믿고 있어. 나도 희망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나는 걱정 말고 채환이를 보내라고 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아무 도움도 못되고 소식도 이제야 주워듣는 못난 동생이라 안그래도 속상하니, 뭐라도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하고 싶다고.
다음날부터 언니와 나는 채환이를 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과 시간을 찾아 나섰다. 일단 12세 미만 아동을 목적지까지 에스코트해주는 UM서비스 운영 항공사를 검색했다. 대한한공과 아시아나에 있었지만 자사 비행기에 한해 서비스가 적용되었고, 불행히도 더블린까지 운행하는 비행기는 없었다. 뒤늦게 네덜란드항공에도 그 서비스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연락해보니 역시 자기네 항공편이 연결되는 곳까지만 서비스가 적용된다고 했다. 더블린으로 올 때 암스테르담에서 갈아타는 비행기는 모두 다른 항공사의 공동운항편이라는 거다. 언니는 아무래도 이번엔 어려울 것 같다고 다음 기회에 보내겠다 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도 그 다음날이 되어도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시 한번 머리를 굴렸다.
'언니, 서울에서 쮜리히까지 네덜란드항공이 운행하는 비행기가 있으면 그리 보내. 쮜리히공항에서 채환이 만나 같이 더블린으로 오면 되잖아. 한국 돌아갈 땐 내가 암스테르담까지 데리고 갈 테니, 암스테르담에서 서울 가는 직항편으로 UM서비스 신청하고.'
말도 안되는 듯한 이 아이디어가 현실이 될 줄은 언니도 나도 몰랐다. 하지만 며칠 후 언니는 '채환이 티켓 발권 완료'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열살짜리 내 조카가 진짜 혼자 유럽에 오는 것이다! 나는 서둘러 조카의 쮜리히-더블린행 티켓과 그애의 귀국날짜에 맞춰 더블린-암스테르담행 티켓도 내것까지 두 장 예매했다. 내친 김에 조카가 다닐 만한 영어캠프가 있는지 인터넷과 한국유학원을 통해 수소문했다. 그런데 녀석의 나이가 애매했다. 대부분 12~16세 대상의 주니어캠프거나 미취학아동이 부모와 함께 참여하는 가족캠프였다. 그때 작년 여름에 친구 자이라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던리어리에 있는 어학원에서 여름캠프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반에 한국 남자아이도 있는데 열살도 안돼 보이더라."
자이라에게 문자를 보내 어학원 이름과 위치를 물어보고, 다음날 그애가 알려준 주소를 찾아갔다. 주니어 여름캠프가 있었고, 보통 12세부터지만 10세도 받아준다고 했다. 주 단위로 등록할 수 있고 8월까지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것,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다는 점도 우리가 찾는 조건에 맞았다. 무엇보다 던리어리면 아침마다 존의 출근길에 차로 데려다줄 수 있고, 수업 끝나는 시간 맞춰 내가 데리러가기도 수월하다. 언니한테 문자를 보내 의견을 물어보니, 언니도 마음에 들어했다.
'좋은 것 같아. 채환이는 지금 완전 신났어. 오후에는 이런저런 액티비티도 한다니 재밌겠다. 아일랜드에서 이모랑 이모부랑 방학을 보낸다니 채환이한테 특별한 추억이 될 거야. 남편은 아픈데 내가 마음이 설레네...'
언니의 마지막 문장에 순간 마음이 쿨렁거렸다. 언니의 마음이 어떤 건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가족 중 누가 아플 때는 좋은 일이 생겨도 미안하고, 기쁘거나 행복한 마음이 들어도 미안하다. 그것이 감정이든 물질이든, 사랑하는 가족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내가 누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죄책감이다. 아일랜드로 오는 엄마도 그런 마음이겠지. 아픈 사위를 두고 한달 넘게 자리를 비우는 게 편치 않으실 거다. 혹시 내가 없는 사이 무슨 일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으신 것 같다. 아픈 아빠를 두고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올 때마다 나를 힘들게 했던 불안감과 같은 것이겠지. 나도 아픈 형부를 두고 엄마와 스위스 여행을 떠나려니 미안하고, 지금 엄마와 채환이가 아일랜드에 온다고 들떠하는 내 마음도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갑자기 닥친 어려운 상황이 우리의 희망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열심히 각자의 일상을 살기로 했다. 무엇보다 형부 본인이 술, 담배 등 그동안의 나쁜 습관들을 끊어낼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열심히 치료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는 게 고맙다.
존과 함께 매일 저녁 형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에도 형부 생각이 날 때마다 잠깐씩이라도 기도한다. 기도의 힘을 그렇게 보태다 가을쯤 형부를 보러 한국에 가야지. 그리고 엄마와 채환이가 오면 아주아주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하루하루가 똑같아 보이는 일상이지만, 잠깐 흐름을 등지고 돌아서보면 한순간도 똑같지 않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흐린 아일랜드 하늘 아래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도, 지극히 평범하나 더없이 특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