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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Apr 27. 2021

몹시 게으른 인간입니다만

자아성찰

어린 시절 수도 없이 읽고 보고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개미와 베짱이』다. 


어렸을 적 이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는 개미는 참 안 되어 보였다. 개미도 분명 힘이 들 텐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반면 시원한 그늘 아래서 여유 있게 노래를 부르는 베짱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부러웠다. 베짱이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덩달아 신이 났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겨울이 온 것이다. 추운 겨울, 부지런히 양식을 준비해 둔 개미는 따듯하고 안락한 실내에서 가족들과 풍족하고 평화롭게 보낸다. 게을렀던 베짱이는 추위에 벌벌 떨며 자신의 과거를 후회한다. 다행히 마음이 넓은 개미가 가련한 베짱이를 집으로 거두는 아량을 베푼다.  


『개미와 베짱이』에서 부지런함은 찬양받아 마땅한 태도이고, 게으름은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태도라는 것을 알려준다. 어린 나의 무의식에도 이것은 깊이 새겨졌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먼 미래의 행복을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게으름은 불쌍하고 처량한 불행한 미래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무의식 깊이 새겨진 이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왔다. 


개미를 찬양하며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어느 날, 뜻하지 않았던 내 인생의 겨울을 갑자기 맞이했다. 분명히 나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했는데, 내 인생의 겨울에 나는 헐벗은 베짱이가 되어 추운 거리를 오들오들 떨면서 걷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온통 의문 투성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돌아봐야 했다. 나는 개미의 탈을 썼던 베짱이였던 것일까?


나의 무의식 깊이 새겨진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게으름에 대해 수치심과 죄의식이라는 부정적인 꼬리표가 달려 있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두려움도 있었다. 게으른 사람이 되었을 경우, 주변의 비난과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께도 그런 영향을 받았다. 부지런하신 두 분은 내가 게으름 부리고 나중으로 미루는 태도를 보이면 야단을 치셨다. 이런 영향으로 나는 내 안에 있는 게으름을 기피대상 1호로 정해버렸다. 


번아웃을 겪으며 나와 내가 가진 생각과 태도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았다. 내게 있어 게으름은 나태하고 쓸모없는 인간과 동일한 취급을 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정말 그럴까? 


게으른 인간임을 인정하기 싫었던 나는 내면에서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다. 부지런한 인간이 아니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게으른 나를 인정하기를 두려워했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을 드러내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게으름과 부지런함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생각해보았다. 


놀라운 건 나는 한 번도 게으름과 부지런함에 대해 정의를 내려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부지런한 것이고, 할 일이 있음에도 끝내지 않으면 그것이 게으른 것이 아닐까 하고 두루뭉술하게 느낄 뿐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게으른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 보기로 했다. 완벽하게 인정해 주기 위해 나에게 말해 주었다. 


'나는 게으른 인간이다.'


인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게으른 인간이라고 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하루 종일 누워서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지는 않는다.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일도 하고, 운동도 한다. 할 일을 온전히 다 하는데도 뭔가 더 해야 하고 더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분주한 생각이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스스로를 게으른 인간이라고 인정해 주자 몸도 마음도 자유로워졌다. 나를 가두었던 게으름에 대한 죄의식, 수치심, 두려움도 자유를 찾아 날아가버렸다. 


개미는 개미로 타고난 것이다. 베짱이는 또 베짱이로 타고난 것이다. 추운 겨울 베짱이가 개미의 집에서 한 철을 보냈다고 다음 해 봄에 베짱이가 개미가 될 수는 없다. 그저 그들은 다른 존재인 것이다. 


개미가 되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믿고 채찍질했던 지난 시간에 작별을 고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나의 모습이 아닌 다른 이의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행복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자신의 정체성 또한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이제 나는 개미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베짱이로서의 나도 충분히 나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매 순간 행복할 수 있고, 내면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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