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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Apr 22. 2021

내 친구, 79년생 김지영

지금도 잊히지 않는 실수

몇 년 전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서점에서 마주했을 때 ‘김지영’이라는 이름에 마음이 움찔했다. 내 친구, 79년생 김지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같은 반 친구 지영이는 키가 작고 마르고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졌고, 동그란 눈과 까만 테 안경을 쓴 귀엽고 착한 친구였다. 지영이와 옆집에 사는 지혜라는 친구도 있었는데, 같은 반이었던 우리 셋은 곧잘 어울렸다. 주로 지혜네 집에서 많이 놀았던 기억이 있다.      

하루는 지영이 없이 지혜와 나, 둘이서 놀았다. 신나게 놀고 오후 늦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집으로 전화 한 통이 왔다. 엄마가 전화를 받으시고 바로 나를 바꿔주셨다. 내 친구라고.      


수화기를 건네받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지영이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네가 나 멍청하다고 했다면서?“

지영이의 한 마디 말에 나는 얼어붙어버렸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지영이는 흐느끼면서 얘길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수화기만 붙들고 지영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기억이 났다. 그 날 지혜랑 놀 때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게 떠올랐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지영이가 진짜 멍청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지혜에게 말했고, 지혜는 그 말을 지영이한테 전달한 것이다.      


지영이는 계속 울고 있었다. 지혜가 수화기를 건네받고 나에게 말했다.

"지영이가 이제 말 걸지 말래."

이 말을 남기고 지혜는 전화를 끊었다. ‘뚜뚜뚜’ 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도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얼어버린 나를 보고 엄마는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부끄럽고 미안하고 친구를 울린 것이 너무 속상하고 창피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착한 친구에게 '멍청하다'는 말을 다른 친구 앞에서 한 것일까?      


내가 한 말을 지영이에게 전달한 지혜가 원망스러웠지만 잘못 한건 나였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지혜와 지영이는 나보다 더 친한 친구사이라는 걸.      


그 날 이후로 나는 두 친구를 잃었다. 나의 말실수로 인해 일어난 일이였다. 한 번쯤은 지영이에게 다가가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죄책감과 미안함에 감히 내가 먼저 사과할 용기가 그때는 없었다. 그 뒤로 지영이와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다. 학교 복도에서 한 번씩 마주쳐도 서로 눈을 피했다. 지영이는 내가 싫어서, 나는 미안해서.     


‘김지영’이라는 이름은 내 어린 시절의 철없음과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떠오르게 한다. 친구든 모르는 사람이든 제3자 앞에서 타인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일을 겪고 뼈저리게 깨우쳤다. 그것이 아무리 실수였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지영이의 얼굴을 지금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귀엽고 착했던 내 친구 지영이, 마흔 세 살이 된 지영이도 나처럼 그 때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상처 줘서 미안해, 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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