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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Apr 08. 2021

내면의 주파수 맞추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 때는 글로 써라

고3 시절 MBC 라디오 <신해철의 FM 음악도시>는 외로웠던 수험생 생활을 견디게 해 준 유일한 안식처였다. 늦은 밤 귀가 후 얼른 씻고 책상 앞에 앉아 카세트를 준비한다. 전원을 켜고 설레는 마음으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춘다. 가장 선명한 소리를 듣기 위해 손가락을 섬세하게 움직이며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치지직 거리는 잡음이 없는 최적의 주파수에 딱 맞추었을 때 음악도시의 오프닝 음악이 DJ 신해철의 음성과 함께 들려온다. 스피커에 귀를 바짝 갖다 대고 매일 두 시간을 그렇게 라디오와 함께 했다.




요즘은 팟캐스트, 오디오 클립, 음악, 클럽하우스와 같은 음성 기반의 서비스가 휴대전화로 제공되기 때문에 주파수를 맞출 일이 없다.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듣고 싶은 음악과 사연을 깨끗한 음질로 편하게 듣게 되었다. 라디오도 휴대전화 어플로 제공이 되는 세상이라 주파수라는 게 지금도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아날로그 감성이 촌스럽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가끔은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며 다이얼을 맞추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잡음 없이 좋아하는 DJ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들었던 그때가 말이다. 


번아웃 증상이 점점 심해졌을 때 내 머릿속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여러 가지 마음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주제도, 원인도 없는 의미 없는 단어와 문장이 소리가 되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몸도 지칠 대로 지쳐 힘도 없는데 정신마저 미쳐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이 소리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지도 알 수 없었지만 어떻게 멈추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저런 목소리에 끌려다니던 어느 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 끌려가다가는 정말 신경쇠약에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펜을 들고 머릿속에서 지껄이고 있는 소리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르는 시끄러운 여러 가지 목소리는 말하는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에 글 쓰는 속도가 그것을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머릿속에서 사방으로 날뛰는 수많은 음성들 중에서 하나를 잡아 글로 썼다. 노트에 적힌 글은 의미도 알 수 없을뿐더러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앞뒤가 맞는 대화도 아니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계속 떠들어대는 소리를 하나씩 노트에 적어나가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그 소리들이 점점 낮아지더니 마침내 조용해졌다. 


소리에 집중했을 때는 마음도 소란스러웠는데 소리를 종이에 적으니 마음도 고요해졌다. 처음이었다. 나의 의지로 머릿속 소리를 조용히 만든 것이. 


그 뒤로도 시끄러운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릴 때는 바로 종이를 꺼내고 펜을 들어 적어나갔다. 종이가 옆에 없을 때는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어 시끄러운 소리를 하나씩 잡아내어 글로 썼다. 여전히 의미 없고 맥락 없는 지껄임이었다. 이 작업을 반복했더니 어느 날부터 마음이 고요해졌고 시끄러운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마이클  A. 싱어의 《상처 받지 않는 영혼》을 읽었을 때 내가 경험한 이야기가 그대로 실려 있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는 이 시끄러운 소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마음속에 에너지가 쌓이면 그것으로 뭔가를 하고 싶어 진다. 목소리가 지껄이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고, 지껄임은 그 불편한 에너지를 풀어 준다.'


결국 편하지 않은 마음이 쌓여 불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마음은 지껄임을 통해 그 에너지를 풀어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상황을 돌이켜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때의 나는 업무에 시달려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은 뒷전이었고, 스트레스는 계속 쌓여갔다. 누구라도 나를 건드리면 금방 폭발할 것 같은 시한폭탄 같았다. 나 조차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그저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고 많이 예민해진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들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방치한 결과 번아웃이라는 인생의 나락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싱어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개인의 진정한 성장이란, 불안해하면서 보호를 요청하는 자기 안의 어떤 부분을 극복해내는 것에 관한 문제이다. 그것은 속에서 지껄이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당신임을 끊임없이 스스로 상기시키는 작업을 통해서 해낼 수 있다.'


싱어가 말한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작업'을 나는 글을 쓰면서 해 온 것이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소리가 들릴 때는 어떤 것이 진짜 목소리인지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가 않는다. 그럴 때는 그 소리를 눈에 보이게 글로 적어야 한다. 마치 지지직 거리는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다이얼을 맞추듯이 말이다. 


잡음을 걸러내기 위해 그것을 글로 쓰다 보면 그제야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내면의 소리에 주파수를 맞출 수 있게 된다. 생각으로 그 소리를 잠재우려 노력해도 그것은 또 다른 잡음을 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음속의 생각을 글쓰기로 풀어내다 보면 내면에 쌓인 에너지가 외부로 빠져나가 풀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힘든 일을 겪을 때 글쓰기로 그것이 해소되었다고 하는데 그것 또한 내면의 불필요한 에너지를 외부로 배출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내면의 주파수를 영혼에 맞춰준다. 글쓰기를 통해 어지러운 마음은 걸러낼 수 있다. 걸러낸 마음을 영혼에 맞춰 그 둘의 주파수가 하나로 일치시킬 때 자기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마음과 영혼의 주파수를 일치시킨 사람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치유 글쓰기는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하는데 도움을 주는 훌륭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삶의 주인으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것이 치유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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