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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Apr 07. 2021

나를 만드는 것들

장점도 나, 단점도 나

한 때 자기 계발서를 열심히 읽었다. 뭔가를 항상 열심히 하는데도 만족이 되지 않아서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들을 닥치는 대로 시도해 보았다. 어느 책에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각각 100가지 적어 보라고 했다. 20대 때 취업 준비를 하며 자기소개서에 장점과 단점을 열심히 적어 보긴 했다. 하지만 그 후로 꽤 오랜 시간 동안 그것들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100이라는 숫자에 놀라기는 했지만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노트와 펜을 준비하고 '장점', '단점'을 쓰고 가운데 세로줄을 그었다. 장점을 적기 위해 펜에 힘을 주었을 때 머릿속이 하얀 백지장이 된 것 같았다. 


'내 장점이 뭐였더라?'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문장을 적었다. 


부지런하다. 


이 한 문장을 쓰고 또 생각에 빠졌다. 한참 후에 또 한 문장을 겨우 썼다. 


꼼꼼하다. 


그 뒤로 2~3가지 문장을 겨우 적었다. 


힘겹게 써 내려간 나의 장점은 '부지런하다, 꼼꼼하다, 적극적이다, 열심히 한다, 책임감이 강하다.' 정도였다. 


장점에 대해 더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아 단점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단점을 떠올리는 순간 장점을 쓸 때와는 다르게 펜이 멈추지 않았다. 


불평불만이 많다, 질투가 많다, 고집이 세다, 키가 작다, 버릇이 없다, 이기적이다, 게으르다...


그 순간, 분명 내가 쓰고 있었지만 나는 깜짝 놀랐다. 장점에 대해 적을 때는 정말 힘들게 한 문장을 겨우 썼는데, 단점을 떠올리는 순간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상했다. 


장점과 단점을 보면서 먼저 리스트의 길이에서 오는 차이에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내가 썼지만 내가 쓴 게 아닌 것 같았다. 


리스트를 다시 한번 읽어보니 그제야 슬픔이 밀려왔다. 


어째서 나는 이토록 내게 인색한가?

어떻게 해서 장점이 다섯 손가락을 펼칠 만큼밖에 되지 않을까?

단점은 왜 이렇게 많지?

내가 정말 이렇게 못 난 사람이란 말인가?


계속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뭐가 문제일까?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일까?


낮은 자존감의 실체를 그 날 마주했다.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도 가슴을 아프게 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과 함께 있어서 자신의 존재감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냥 그게 나니까, 그런 거지 뭐.'라고 말해 버리기에 우리 각자는 너무 소중하고 귀하다. '나'란 존재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인식해야 한다. 


그 날의 충격으로 인해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주의를 기울여 나를 살피고 관찰을 하기로 한 것이다. 잘하고 못 하는 것을 떠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어떨 때 기쁜지, 어떨 때 화가 나는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것을 노트에 적으며 나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고 하던 행동이 새롭게 느껴졌다. 느낀 점을 글로 쓰니 행동 너머에 있는 마음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와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장점과 단점을 쓰는 노트도 한 번씩 업데이트를 했다. 장점이 늘어나고 단점이 지워졌다 다른 게 생겨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리스트를 읽어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점도 '나'고, 단점도 다 '나'네. 모두 다 나인데 장점이라고 더 사랑할 것도 없고, 단점이라고 미워할 이유가 없잖아.'


장점의 '장'은 한자로 길 장이다, 단점의 '단'은 짧을 단이다.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다는 뜻이다. 장점과 단점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뜻하는 게 아니란 걸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장점은 조금 줄이고, 단점은 조금 늘리면 딱 적당한 길이가 나온다. 장점도 단점도, 어차피 모두 내가 가진 것이니 조화롭게 사용하면 되는 거다. 그것을 알고 나서는 장점이라고 으스대지 않고 단점이라고 주눅 들지 않게 되었다. 


모두 다 내가 가진 것이니까 소중한 나의 재산이니까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다. 


생각만으로는 알지 못한다. 하얀 종이를 마주하고 펜을 들고서 장점과 단점을 하나씩 적어나가다 보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발견으로 자신을 더 깊게 알게 되고 가까워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자신을 대할 때 자존감은 스스로 빛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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