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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Apr 20. 2021

느낀다, 쓴다, 알아차린다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집 중에서 『헬렌 켈러』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헬렌 켈러는 태어난 지 19개월이 되었을 때 심각한 열병으로 인해 시각과 청각을 잃었다. 소리를 들을 수도 앞을 볼 수도 없게 된 헬렌 켈러는 오직 감각을 통해서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세상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헬렌 켈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팔다리를 휘두르며 어두운 자신의 내면을 거칠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녀의 부모는 퍼킨스 맹아학교 교사 출신인 앤 설리번을 가정교사로 고용한다. 


설리번 선생 또한 시각 장애를 가졌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누구보다 헬렌 켈러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했다. 설리번 선생은 인내심을 가지고 헬렌 켈러를 가르쳤다. 두 사람의 신뢰와 노력으로 헬렌 켈러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유명 인사가 되어 장애인과 여성의 권익을 알리고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여기까지는 고난을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전형적인 위인의 이야기다.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이 만든 기적 같은 이야기 중에서 지금까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 이야기는 이것이다.   


설리번 선생이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녀는 헬렌 켈러에게 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어린 헬렌 켈러에게 설리번 선생은 아이를 분수로 데려가 손으로 물을 느끼게 하고,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손바닥에 '물'이라고 썼다. 헬렌 켈러는 그 순간 알아차렸다. 자신이 느낀 그것의 이름이 손바닥에 쓰인 그 단어라는 것을 말이다. 


이 대목을 읽었을 때 느꼈던 전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순간 마치 내가 헬렌 켈러가 된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캄캄한 세상에서 내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피부를 통해 느끼는 감각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손으로 물의 감촉을 느꼈다. 그것을 느낀 순간 설리번 선생이 내 손바닥에 '물'이라는 단어를 써 주었다. 방금 느낀 물의 감촉과 선생님이 쓴 그것이 일치한다는 것을 그 순간 알아차렸다. 알아차림의 순간 나는 환희와 감동을 느낀 채 분수대 앞에 서 있는 헬렌 켈러가 되었다. 


'느낀다, 쓴다, 알아차린다.'


이 세 가지의 이어짐과 깨우침에 전율했다. 특히 '쓴다'는 것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헬렌 켈러의 캄캄한 내면을 비추는 빛이 되어주었다. 


느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낀 것을 써야 한다. 그래야 알아차릴 수 있다. '쓴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것이다. 


헬렌 켈러의 이야기를 통해 느꼈던 마법 같은 그 순간의 깨달음이 그 후에도 계속해서 내 인생에 이어졌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나는 아주 평범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아니 평범하지 않았다. 직장생활 16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승진도 물거품이 되고 밀려드는 업무에 찌들어 내가 누군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몸과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위인전을 읽고 마법 같은 순간을 느꼈던 소녀는 번아웃을 맞이한 서른아홉 살의 평범하지 않은 불쌍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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