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지기 마야 Apr 10. 2021

나와 있을 때 제일 행복해

유통기한이 없는 행복

토요일 오전 늦잠을 자고 일어나 오래간만에 동네 한 바퀴를 돌러 산책길을 나선다.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평일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주말에 느낄 수 있는 주말만의 공기가 나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느슨하고 여유 있고 게으름을 허락해주는 에너지가 만들어낸 토요일 오전이다. 공기와 공기 사이에 여백이 존재하는 여유 가득한 주말만의 에너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여백이 가득한 주말의 공기를 느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꽃잎이 흩날리는 풍경, 놀이터 아이들의 웃음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여유 있는 걸음도 모두 보기 좋다. 산책로 길가에 튤립이 예쁘게 피어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참 바라본다. 선명한 붉은 빛깔과 노란 빛깔에 마음이 빼앗긴다. 그 빛깔에 마음이 빼앗긴 건 나만이 아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들도 모두 한 마디씩 내뱉는다.


"어머나, 어쩜 이렇게 색깔이 선명하고 예쁠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느끼는 마음은 모두 같다. 기분이 좋다. 


선명한 빛깔을 품은 튤립을 마음에 품고 걸음을 옮기며 순간이 주는 행복에 나도 모르게 불쑥 이 말이 튀어나왔다. 


'나와 있을 때 제일 행복해.'


요즘 느끼는 마음이다. 진심으로 나와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 혼자 산책하며 내면을 느끼고 대화하는 그 시간이 세상 둘도 없이 행복하고 소중하다.


한때 ‘너랑 있을 때 제일 행복해.’라는 말을 들었다. 나도 똑같이 말했다. '너랑 있을 때 너무 행복해.'


그렇게 달콤한 말을 건네었던 이들은 지금 내 옆에 없다. 생각해 본다. 나 아닌 타인과 나눌 수 있는 행복은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하고. 


어쩌면 타인과의 행복에는 유통기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아닌 분리된 무언가와 교류하는 감정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사랑, 행복과 같은 좋은 감정뿐만 아니라, 미움, 증오, 분노 또한 그런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희미해져 어느 순간 잊혀 버리고 사라진다. 감정의 유통기한이 다 된 것이다. 


서로의 감정에 유통기한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그들은 멀어진다. 그리고 잊힌 존재가 된다. 타인과의 관계는 그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자신과의 관계는 다르다.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진 순간부터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자신과는 중간에 유통기한이 종료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일어날 수 없다. 애초에 유통기한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타인과의 유통기한을 오래도록 지속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하고 애쓸수록 유통기한은 짧아졌고 나는 지쳐갔다.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한다.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내면으로 향했다. 그러자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진다. 내면의 평화가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다. 


이것을 느끼기 위해서 대단한 노력은 필요하지 않다. 가부좌를 틀고 오랜 시간 명상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기분은 어떤지 자신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러면 마음은 대답해준다. 마음의 대답을 느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게 전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나누는 데는 유통기한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길을 걸으며 나와 대화한다. 길가에 핀 꽃을 보며 행복해한다. 행복한 나를 느끼며 나도 행복해진다.


다시 한번 나에게 말해준다.


'나와 있을 때 진짜 행복해.'


  

매거진의 이전글 퇴고의 시작은 사랑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