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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Jan 07. 2021

퇴고의 시작은 사랑이다

고치고 다듬고 읽고 잘라내고 덧붙이며 알게 된 것

"작가님, 글 분량을 더 줄여주셔야 해요!"


2019년 첫 번째 공동 저서 출판을 준비할 때였다. 원고를 다듬어 보내고 며칠 뒤, 편집자에게 가장 먼저 받은 피드백은 분량을 줄여달라는 말이었다. 초고를 쓰며 대략적인 글의 분량을 안내받았지만 솔직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막막했다. 글을 들여다보다가 끝내 막막함을 이기지 못한 채 마감만 맞춰 급하게 보내버린 원고였다. 숙제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하기는 싫어서 대충 해버리고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것만 같았다. 


내가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마주 보기가 힘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낸다는 게 좋으면서도 부끄러웠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글이 책이 되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인내와 노력은 필수이고 잘 읽히게 만드는 능력도 필요했다.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부담은 커졌고 내 글은 여전히 모자라고 부족해 보였다. 부족함 투성이의 글이 꼭 내 모습 같았다. 못난 내가 꺼내어 놓은 글이니 내 글도 못나보였다. 퇴고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도무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끙끙대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의 글의 첫 독자는 자기 자신이다."


이 문장이 떠오르자 내 모습이 그제야 보였다. 나는 글이 아닌 나의 못난 모습이 보기 싫어 퇴고를 피하고 있었던 거였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보기 싫었던 글이 글로서 눈에 들어왔다.


'내가 내 글을 가장 먼저 사랑해 줘야 되지 않을까? 잘 썼든 못 썼든 내 글을 사랑해주자!' 


내 글의 첫 독자로서 글을 읽자고 마음을 먹으니 가슴이 펴지고 등이 바르게 세워졌다. 얼마나 많은 독자가 내 글을 읽을지 알 수는 없지만 '세상에 이것도 글이라고 책으로 내놓다니!'라는 비난은 피하고 싶었다.


독자 입장에서 글을 읽으며 다듬었다. 긴 문장은 짧게, 불필요한 조사와 반복되는 단어는 과감히 없앴다. 소리 내어 읽어보며 어색한 문장이 없는지 살폈다. 


독자이기만 했을 때는 알지 못한 것들이 글을 쓰고 퇴고를 하면서 많이 배우고 알게 되었다. 결국 독자들에게 잘 팔리는 책은 눈으로도 입으로도 잘 읽히는 책이었던 것이다. 한 편의 글을 세상에 내어 놓기 위해 작가는 수십 번 혹은 수백 번 고치고 또 고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퇴고의 기쁨


퇴고에 대한 마음을 새롭게 한 후 글을 쓰고 다듬는 태도가 바뀌었다. 어떤 일이든 형식이 먼저가 아니라 마음 가짐이 먼저였다.


퇴고의 시작은 자신의 글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고치고 다듬고 읽고 잘라내고 덧붙이며 퇴고를 하다 보면 어지러워 보기 싫었던 생각과 감정도 다듬어진다. 말끔하게 정돈된 글을 보면 마음도 편안해지고 스스로도 대견스럽다. 내 글의 첫 독자로서 글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퇴고를 하며 배웠다. 힘들지만 회피하지 않고 내 글을 마주하며 퇴고를 할 때 나에 대한 신뢰와 사랑도 커진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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