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지기 마야 May 15. 2021

보고 싶다 아니 보고 싶지 않다

퇴고를 하며 드는 생각이다.


글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올라온다. 잘 쓴 글을 세상에 내 보이고 싶은 욕심이 들다가도 퇴고 과정이 머릿속을 스치면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에게는 자신의 모습이 애증의 존재였듯이, 내게는 퇴고가 애증의 존재가 되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해내기는 해낼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은 마냥 즐겁거나 신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놓을 수가 없다. 




비 오는 토요일 오후, 카페에 앉아 퇴고를 하다가 갑자기 윤동주를 그리워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판사 피드백을 받고 현타가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