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 위한 행복이 아닌 지금 현재를 느끼고 즐기는 것이 진짜 행복이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 H는 고등학교 때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어렸을 때는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지금은 SNS로 서로의 소식을 접한다. 친구는 결혼을 해서 귀여운 딸을 낳았고, 어느덧 학부모가 되었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친구의 SNS도 아이의 사진으로 빼곡히 채워져 갔다.
나는 친구가 올리는 아이 사진을 참 좋아한다. 친구는 먼발치에서 아이가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귀여운 꼬마 여자 아이의 뒷모습에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공원에서도 바닷가에서도 집 뒷마당에서도 아이는 자유롭게 세상을 탐험한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친구 곁에서 나도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미소가 지어진다.
한 번은 친구에게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얘길 했더니, 친구는 반색을 하며
"정말? 다른 사람들은 애를 왜 그렇게 작게 나오게 찍냐고 한 마디씩 할 때가 많아."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의 따뜻한 시선과 아이의 행복이 느껴지는 사진은 언제 봐도 기분 좋아진다.
작년 봄, 제주 여행 중에 아쿠아리움에 들른 적이 있다. 수많은 해양동물이 있는 전시실을 지나 거대한 수조 앞에서 다이버 공연을 기다릴 때였다. 공연 시작 전 관람객들이 대형 수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중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와 커플룩으로 옷을 맞춰 입은 아이 엄마가 눈에 띄었다.
아이 엄마는 삼각대를 세워 놓고 분주히 움직였다. 타이머 설정을 하고 아이 곁으로 가 포즈를 취했다. 그런데 아이의 관심은 카메라에 있지 않았다. 대형 수조 안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수많은 바다 생물들에게 마음을 모두 빼앗긴 듯해 보였다. 아이가 포즈를 취하지 않자 엄마는 아이에게 짜증을 냈다. 아이 엄마는 다시 타이머를 맞추고 아이 옆으로 와서 카메라를 향해 웃었다. 하지만 꾸중을 들은 아이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고 풀이 죽은 듯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자연스럽게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가 아이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면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 친구 딸아이와 내 앞에 있는 아이의 모습이 겹쳐져 괜스레 마음이 짠해졌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미국의 심리학자인 웨인 다이어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에서 현재의 행복을 피해 다니는 태도를 '현재 기피증'이라고 말했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A는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자연 속에서 보내고 싶어 숲으로 여행을 간다. 하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자 마무리 짓지 못한 업무와 집안일들이 떠올라 힐링은커녕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B는 큰 맘을 먹고 해외 고급 리조트로 휴가를 떠났다. 그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기보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에 바쁘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자신을 얼마나 부러워할지 상상하며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어쩌면 제주에서 봤던 아이 엄마도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기피증’으로 인해 아이가 느끼고 경험해야 할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 버린 것은 아닐지.
2018년 8월에 바하마 제도에 있는 요가 리트릿 센터로 일주일간 휴가를 떠난 적이 있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던 때라 힐링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곳에서 스마트폰은 가급적 멀리하고 자연을 느끼며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해안가에서 소라 껍데기를 주우며 시간을 보냈을 때다. 새끼손가락 손톱보다도 더 작은 소라 껍데기는 완벽한 나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완벽한 아름다움에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느꼈던 행복함에 몸도 마음도 모두 치유되는 것 같았다.
그 먼 길을 어떻게 찾아갔고, 어떻게 다시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의 행복과 감동은 6년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행복은 사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찰나의 경험과 느낌으로 우리 마음속에 간직되는 것임을 그때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나무 위키에서는 '오늘'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지금 당신이 보내고 있는, 또 어제 보냈던, 그리고 내일이 되면 다시 새롭게 보내게 될 날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이다. 우리는 영원히 오늘만 살아간다.
찰나 같은 오늘을 회피하며 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소중하다. 오늘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행복과 경험을 온전히 즐기고 누려야 한다. 그래야만 소중한 오늘이 쌓이고 쌓여 인생이라는 긴 시간을 풍성하게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