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지기 마야 Oct 22. 2020

마음이 흔들리는 날에는 광화문으로 가야 한다

서점에서 산책하기 딱 좋은 날

이상하다.

불안하지 않은데 불안한 것 같고 슬프지 않은데 슬프다. 내 안을 들여다봐도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조바심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종 잡을 수가 없다.


마음을 들여다봐도 도대체 왜 이렇게 멜랑 코리 한지 알 수가 없다.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보려고 해도 찾아지지 않는다. 대신에 내 마음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광화문으로 가자.’


갑자기 광화문으로 왜 가고 싶은지 역시나 이유는 모른다. 그냥 갑자기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내면의 명령이 들렸다, 


광화문이라...


내가 광화문에 갈 때는 한 가지 이유에서다. 바로,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직장과 집에서 가까운 강남점도 있는데 왜 멀리 있는 광화문까지 가고 싶은 걸까?


알 수가 없다. 

그냥 내 마음이 광화문으로 가라고 한다. 오늘은 강남점은 아니라고...


주말도 아닌 평일인 오늘 지금 바로 그곳에 들러야 한다고 한다. 나도 나를 모르겠는 때가 있다면 이런 때다.


내 안의 상전은 이렇게 앞뒤 이유를 불문하고 나에게 명령한다. 그다지 순종적이지 않는 나이지만 이유가 있겠지 싶어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른다.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우리 동네 지하철 정거장을 벌써 지났기  때문이다.


5호선으로 갈아타지 않고 3호선을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린다. 대충 방향만 그려보고 교보타워와 가까울 것 같은 6번 출구를 선택했다. 지하세상에서 바깥으로 나오니 경복궁이 바로 시야에 들어온다.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던 기분 속에서 당황하던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한옥을 좋아한다. 기와를 좋아하고 대청마루를 좋아한다. 기와의 선이 그리는 곡선과 직선의 대비가 좋다. 검은색이지만 검지 않은 기와의 색도 매력 있다. 


이거 때문이었나? 5호선을 선택하지 않고 부러 돌아가고 걸어가야 하는 3호선을 선택한 이유가? 그랬다면 성공이다. 흔들리는 내 마음이 1차 힐링되었으니까. 깊어가는 가을을 잠시 음미하며 경복궁 담벼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걸음을 옮긴다. 


교보문고로 걸음을 옮기며 강남과는 왠지 다른 공기의 강북을 느껴본다. 달라서 좋다. 같은 서울이지만 다른 곳에 와 있는 기분을 순식간에 느낄 수 있다는 건 참 신비롭다. 강 하나 건넜을 뿐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이건 정말 아찔한 매력이다. 


강남과 강북의 아찔한 매력이라는 엉뚱한 발상을 붙잡고 걷다 보니에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점에 갈 때는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나 신간 구경 또는 시장조사(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내 책을 위한)를 위한 목적성 방문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마음이 흔들리는 날에는 본래의 목적은 접어두고 딱 하나만 집중한다. 그것은 산책이다. 



글자가 새겨진 나무와 나뭇잎들 사이를 걷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굿즈와 상품들도 만날 수 있다. 이런 구경거리도 내게는 숲을 산책하며 만나게 되는 다양한 생명체들을 만나는 것 같은 셀레임과 기쁨을 준다. (때로는 진짜 생명체도 만난다. 예를 들어 게와 열대어는 진짜 숲 속에서는 보기 힘든 생명체들이다.)


산책을 하러 서점에 갈 때는 평소 관심 없던 분야의 서가도 일부러 들러본다. 낯선 길에서 흥미로운 발견을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듯이 잡지, 예술, 여행, 요리, 외국어, 만화, 종교 등등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살펴본다. 


이렇게나 많은 책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새삼 놀라움과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본다.

'나는 어디쯤에 있는지, 나의 무엇을 이곳에 내어놓고 싶은지, 그것을 이룰 준비가 되었는지' 나를 들여다보며 나에게 물어본다.  


흔들리는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끄집어내어 놓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어느새 다짐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내 마음이 왜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는지 말이다.

조바심 나고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이고 내가 뭐라고 작가가 되겠다며 난리 부루스를 치냐며 괜한 열등감으로 나의 자존감을 낮추는 못난 마음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 마음을 달래주고 토닥여주려고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다시 꿈을 꾸게 하기 위해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기 위해 내 마음은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무척이나 고맙구나!!!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이 없듯이 내 마음도 이렇게 흔들리며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마음이 흔들릴 때면 광화문으로 갈 것이다. 

빌딩 숲이 아닌 책 숲에서 길을 찾아 헤매며 나만의 길을 만들기 위해 발길 닿는 데로 걷고 또 걸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나의 나무 한 그루가 푸르게 자라나 나와 마주하고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소망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두 번째 사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