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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Nov 09. 2020

이번 생에 위대한 사람이 되긴 글렀어

위대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이 글에서 위대한 사람은 위가 큰 사람을 의미함.*


식탐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많이 먹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입이 짧은 편은 아니다.

밀가루 음식을 즐겨 먹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먹는 편이다.

다이어트를 꾸준히 하지는 않지만 체중이 불어나는 것은 경계한다. 


이러한 나의 성향 때문에 나와 반대되는 대식가, 밀가루 러버, 먹어도 살 안 찌는 신기한 체질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종종 유튜브로 먹방을 본다. 


몇 해 전에 처음으로 먹방을 접했을 때는 솔직히 많이 놀랐다. 


'어떻게 저렇게 많이 먹을 수 있지?'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맛있게 먹지?'

"저렇게 먹는데 어떻게 살이 안 찌지?'


영상을 보면서 솟구치는 침샘을 뒤로하고 끊임없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먹방 유튜버에 따라 양은 조금 차이가 나겠지만 한 번에 라면 10봉, 짜장면은 10그릇, 김밥 10줄 등등 보통 성인 3-4인분을 혼자서 거뜬히 해치우는 그들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엄청난 양에서도 놀랐지만 그 많은 양을 정말 맛있게 먹는다는 데서 더 놀랐다. 이 놀라움은 '나도 도전해볼까?'라는 쓸데없는 경쟁심을 자극하고 급기야 '도전해보자'라는 무모한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도전을 위해 짜장라면 두 봉지를 야심 차게 끊였다. 다섯 개는 못 먹을게 뻔하지만 두 개는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항상 한 개는 조금 작아 보였는데 두 개를 끓이니 확실이 양이 많았다. 내심 뿌듯했다. 


'두 개 정도야.'


라면 두 봉지를 우습게 여기며 나는 먹을 수 있을 거라 자신만만해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먹고 나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한 개 반 정도는 먹은 것 같았다. 그런데 더 이상은 먹을 수가 없었다. 내 손이 젓가락질을 하는 것을 멈추었고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맙소사!'


결국 나는 짜장라면 두 봉지를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그때 나는 한 가지를 깨우쳤다. 

그것은 1인분이 왜 1인분인가 하는 것이다. 당연히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의 위가 소화시킬 수 있는 적정량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계산해서 1인분으로 계량하고 상품으로 만든 것이란 걸 알았다. 인스턴트식품은 당연하고 식당에서 조리하는 음식도 계량으로 1인분을 맞춘다.


너무 당연한 것인데 나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뒤로는 혼자 먹을 때 절대로 라면 두 봉지는 시도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그다지 배가 고프지는 않았는데 라면 국물이 먹고 싶었다. 하나를 끓이면 많을 것 같아서 반만 끓여보기로 했다. 양이 조금 부족할 거라 예상했지만 허기가 지지는 않아서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라면 반 개를 다 먹으니 조금 아쉬웠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찬밥 반 공기를 국물에 말아먹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나는 더없이 기분이 좋았다. 


아니, 내가 기분이 좋다기보다 나의 위장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소화시키기에 무리 없는 적정한 양을 제공해 주어서 기쁘게 일하는 느낌, 신기하게도 나는 위장이 기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내 위장이 좋아하는 양은 라면 한 개도 아니고 라면 반개와 밥 반공기, 이게 다구나.' 싶어 혼자서 피식 웃었다. 


그동안 나의 위장을 기분 나쁘게 한 일들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던 것이다. 


너무 아쉽지만 이번 생에 위대한 사람이 되기는 그른 것 같다. 위소한 나를 대신해 위대한 먹방 유튜버를 보면서 맛있게 많이 먹는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에 그쳐야 할 것 같다. 


부디 맛있게 많이 드시는 먹방 유튜버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위대한 여정을 해 나가길 바란다. 위소한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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