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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Nov 08. 2020

쿨하지 못해 미안하지 않아

너와 나의 온도 차이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차이

“왜 그렇게 쿨하지 못해?”


얼마 전까지는 연인이었으나 관계 정리를 한 후 그가 내게 전화로 한 말이다. 이별은 받아들였으나 내 마음은 아직 정리가 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별 후에도 서로 안부 물으며 지내자고 얘기를 했지만 나는 그의 전화를 피하고 있는 중이었다. 용건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전화가 오면 놀라 뛰는 내 가슴을 어떻게 진정시킬지 몰라 당황하기만 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편하게 전화를 받을 수 없었기에 그에게서 걸려오는 전화에 통화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 피하기만 하다가 무슨 용건인지 들어는 봐야겠다 싶어 전화를 받았는데 그에게서 들은 첫마디가 쿨하지 못한 나를 비난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그렇구나. 나는 쿨하지 못했구나.'


'나는 쿨하지 못했고 너는 쿨했구나. 아니 너는 벌써 쿨해졌구나.'






한 동안 이 말이 비수처럼 내 가슴에 꽂혀 있었다. 


그 비수가 나를 못난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자기 비하를 시작했다. 


'이그, 못난이! 너는 왜 그렇게 쿨하지 못하니. 그게 뭐라고. TV 드라마처럼 헤어진 연인도 쿨하게 인사도 하고 밥도 먹고 웃으며 안녕하고 돌아설 줄도 알아야지. 뭘 그렇게 힘들어해, 바보같이.'


그의 말처럼 쿨하지 못한 나는 나 자신을 바보 멍청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끊임없이 나를 자책했다. 


그렇게 자책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쿨하지 못한 게 아니라 쿨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 사람과 다를 뿐이야.'


맞다. 그랬다. 


남녀가 서로에게 끌려 연인 사이가 될 때도 그렇고 뜨거움이 식어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각자 자기만의 온도가 있는 법이다. 먼저 뜨거워진 사람이 고백을 하고, 먼저 식어버린 사람이 이별을 통보한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사람이 있고, 천천히 식어버리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고백을 받아들이고 이별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상대방과 똑같은 속도로 온도가 높아지거나 낮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과 똑같은 온도를 유지해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바란다. 우리는 각자 다른 존재이고 서로 다른 감정의 온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상대에게 나와 똑같은 온도가 되어야 한다고 어떻게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의 사랑 온도는 양은 냄비 같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뚝배기 같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연인 사이일 때 '나는 이렇게 뜨거운데 너는 왜 덜 뜨겁니?'라고 하거나 헤어진 후에 '나는 이렇게 쿨해졌는데 너는 왜 아직도 미지근하니?'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면 그 기간이 얼마가 되었든 수많은 감정이 오고 간다. 연인이 있기에 생기는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 자신이고 감정은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다. 


특히 이별 후에 느끼는 헛헛함과 아픔, 슬픔, 외로움의 감정은 사랑을 시작할 때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별 후에는 이런 나의 감정을 위로해주고 거두어들이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애도의 시간이 1박 2일이면 충분할지도 모르지만 어떤 이는 만났던 시간보다 더 오래 애도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건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는 내가 쏟아내었던 내 감정에 대한 위로와 위안을 위한 시간인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알게 된 것이 있다. 


결국에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을.


죽을 만큼 힘들었던 아픔도 일상에 파묻혀 살다 보면 어느덧 무뎌지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그를 죽을 만큼 사랑해서 쉽게 쿨해지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다. 아니면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이라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내가 느끼고 품었던 내 감정들이 다시 나에게로 향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아팠던 마음을 다독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독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사람은 상대보다 더 차갑게 쿨해질 수도 있다. 


너와 나의 온도 차이는 너무나 당연한 차이인 것이다. 내가 상대보다 덜 뜨겁다고 혹은 덜 차가워졌다고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비하해서는 안 된다. 


내 감정의 온도는 내가 잘 확인하고 유지해야 한다.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워도 생명에 지장이 생기는 것과 같이 감정의 온도도 너무 뜨겁지 않게 너무 차갑지 않게 36.5도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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