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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Nov 27. 2020

1인 가구의 독박 살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킬 것은 지킨다

'독박 육아'라는 말이 있다. 

혼자서 모두 뒤집어쓰거나 감당한다는 뜻인 '독박'과 '육아'를 합쳐 이루어진 신조어이다. 자녀가 있는 (특히, 영유아) 가정에서 부모 중 한 사람이 육아를 맡을 때 이 단어를 쓴다. '독박 육아'가 주는 뉘앙스에는 육아에 대한 엄마, 아빠의 육체적, 정신적 고단함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나는 7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루 중 겨우 반나절 조금 넘는 시간 동안 12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지만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왕성한 활동력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호기심 넘치는 질문과 씨름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솔직히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다. '독박 육아'를 겪어보지는 못 했지만 그 느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 가정의 생활을 들여다볼 때 육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겠지만 살림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독박 육아'와 더불어 '독박 살림'이라는 말도 있다. 독박 살림 역시 가구 내 한 사람(주로 아내 혹은 엄마)이 도맡아 살림을 할 때 사용한다.

 

예전에는 육아를 포함한 모든 가사 일은 대체로 엄마의 몫이었다. 나의 엄마도 그랬다. 식사, 설거지, 빨래, 청소 등등 모든 집안일은 엄마가 다 하셨다. 세탁기도 없고, 청소기도 없던 시절에 엄마는 하루 종일 집안일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셨다.


세상이 바뀌고 남녀평등(이런 단어를 쓰는 것조차 불평등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사회가 되면서 가사 일도 가족 구성원들이 분담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진 것도 이유일 것이고 부부이고 부모이기 이전에 독립된 개체로서 각자의 사생활 또한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도 한몫을 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결혼한 남동생이 본인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고 엄마와 나한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다. 동생 딴에는 엄마와 누나가 자기편을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누나라는 사람이 한 말은 이것이었다.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밥하는 게 당연하고 (주로 남동생), 주말에 당직 안 서는 사람(이 또한 남동생)이 청소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며 그런 걸로 생색내지 말라고 핀잔을 줬더니 그 뒤로는 내 앞에서 본인의 가사 분담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내가 너무 정색하며 말을 하긴 했다.)


일부러 올케 편을 들려고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너무 당연한 것을 생색내려고 하는 동생의 철딱서니가 우스워서 핀잔을 줬던 거였다. 


본인이 부담하는 가사 일을 생색내려고 한 동생을 떠올리다가 나는 어디 가서 생색낼 수도 없는 1인 가구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1인 가구는 가사를 분담할 사람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자기 몫이다. 독박이라는 단어도 둘 이상이 존재할 때 성립이 되므로 1인 가구에는 적합하지 않은 단어다.


혼자 사는데 할게 뭐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1인 가구도 남들과 똑같이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분리수거도 해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처리해야 한다. 대식구보다 양은 적겠지만 혼자 살아도 살림을 꾸려가기 위한 행위는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필요하고 그것은 오롯이 자신만의 몫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누가 차려 놓은 밥상이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차려 먹어야 하고 설거지도 내가 해야 한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도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대에 널고 또 게어야 하는 그 과정이 귀찮을 때가 있다. 매일 쓸고 닦고 하지는 않지만 주말이면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전자레인지가 있으면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을 사다 쟁여 놓을 것 같아서 일부러 들여놓지 않고 있다. 냉장고도 일부러 소형으로 장만했다.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사다 놓고 안 먹고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을 한 선택이었다. 


하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나지만 해도 티가 나지 않는 것이 살림이다. 이건 1인 가구의 살림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100% 나의 몫을 100% 책임지고 해내야 한다. 


나의 노고를 치하해 줄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를 위한 공간과 나를 위한 살림에 나의 사랑과 애정을 듬뿍 담아 오늘도 기꺼이 기쁘고 즐겁게 1인 가구의 독박 살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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