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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Nov 19. 2020

나의 노후를 위한 나만의 블루프린트

이제부터 내 인생은 내가 설계한다

유튜브 채널 중 EBS 건축 탐구 '집'을 유독 즐겨보는데, 이 프로그램은 전국 각지에 숨어있는 멋진 전원주택을 소개해준다. 단순히 집 모양만 소개해 주는 것은 아니고 건축주가 집을 짓게 된 사연과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의 에너지까지 따뜻하고 정겹게 스토리로 구성을 해서 보여준다.  


비슷비슷한 구조와 모양의 아파트보다 마당이 있는 주택을 나는 더 좋아한다. 언젠가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내 집을 짓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형태의 주택을 만나는 것이 무척 즐겁다. 마치 내가 집 지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더 설레는 것 같기도 하다.  


각각의 집에는 건축주의 개성과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부부를 위해서, 반려 동물을 위해서, 취미생활을 위해서,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등의 제각각의 이유로 문 하나 창문 하나 대충 설계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과 가족이 함께 어울리고 나누는 공간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정성과 고민이 들어가는지를 이 프로그램을 보며 또한 배우고 있다.  


건축주의 인터뷰를 듣다 보면 그들의 가치관과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엿볼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집은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삶이자 인생이라는 생각이 어느 날부터 들기 시작했다. 



나는 내 인생의 터전에 어떤 모양의 집을 지어놓고 살고 있을까? 


성인이 된 후 지난 20년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앞만 보며 달려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열심히 했다. 30대 초반에 미국으로 건너가 낯선 문화와 언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도 했다. 얼떨결에 결혼도 했고, 이혼도 했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10년 간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니 벌써 나이 '40'이 되어 있었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잘 살아온 게 맞나?' 하는 의문을 그제야 가지게 되었다. 


내가 꿈꾸고 그렸던 나의 삶이 지금의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 못 되었던 것일까 하고 날마다 되내어 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후회 없이 살아온 것 같은데 비바람을 막아줄 천장도 벽도 없는 텅 빈 공터에 홀로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랬다. 나는 내 삶의 명확한 블루프린트 하나 없이 삶이라는 터전에 그저 닥치는 대로 내 삶이라는 집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존심이 강했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많이 의식했다. 내면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우선시했다. 나를 위한 선택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 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은 늘 공허하고 허무했다. 


공허함과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 나를 더욱더 몰아세우다 마침내 우울증과 번아웃을 겪게 되었고, 그때 가서야 나를 겨우 멈춰 세울 수 있었다. 


나의 청년기를 돌아보며 내가 지은 내 인생의 집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제대로 된 블루프린트 없이 그저 닥치는 대로 대충 이리저리 만든 이상한 모양의 집을 보는 것 같았다. 방 구조도 출입문도 창문도 제대로 된 게 없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집이 내 청춘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어떻게든 비바람을 피하려고 애쓰며  일그러진 그 집에 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멋진 미래를 언제나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었다. 

구상을 한 후에는 블루프린트에 정확하게 도면을 그려야 한다. 치수를 정확하게 재야 하고 자제는 어떤 것을 사용할 것인지 구조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설계 단계에서부터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 


꼼꼼하게 설계를 해도 막상 집 짓기를 시작하면 다양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물며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게는 내 청춘의 블루프린트가 없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제대로 된 블루프린트 없이 지난 20년을 살아온 것이 후회도 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지금 나의 모습이 과거의 내가 만든 모습이라면 미래의 나의 모습은 지금부터 내가 만들어 갈 모습인 것이다. 


앞으로의 20년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하늘이 허락한다면)을 위해 내 삶의 블루프린트를 정성을 들여 설계해 보기로 한다. 


지난날 다른 사람들의 눈에 좋아 보이는 집을 짓고 싶었던 나였다면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나만을 위한 내가 원하는 나의 집을 그려낼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한테 물어보면서 나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로 한다. 


남들이 하니까 누가 이게 좋다고 하더라고 해도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남들에게 좋은 건 남들에게 좋은 것이지 나에게도 좋을 거란 보장은 없다.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고 뭐라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대충대충 얼렁뚱땅 넘어가며 비 새고 금가고 문이 잘 닫히지 않는 엉성한 집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시는 그런 집은 짓지 않을 것이다.


뭘 그렇게 신중하게 생각하냐고 그만 좀 고민하라고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것이다. 내 인생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그 누구도 나의 인생을 대신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할 만큼 경험했다. 그러니 나를 위해 최대한 신중하고 정성을 들여 선택할 것이다. 그래야 후회를 하더라도 남 탓이 아닌 내 탓이라고 나 자신에게 당당히 말해 줄 수 있다. 


나는 지금 내 노후를 위한 블루프린트를 내 앞에 펼쳐 놓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푸른빛 격자무늬 종이를 보고 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멋진 설계를 이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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