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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Dec 04. 2020

혼자 살아도 지킬 것은 지킨다

나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적극적인 애정 표현


퇴근 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나를 위해 누군가가 저녁을 좀 차려 주었으면 좋겠고 나 대신 설거지도 좀 해 줬으면 좋겠다. 휴일이면 밀린 빨래도 나 대신해 주고, 내가 외출한 사이 누군가가 청소도 말끔하게 해 준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바라는 누가 또는 누군가는 1인 가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가 바로 나이고, 밥도 해 주고 설거지도 해 줬으면 하는 그 누군가도 다름 아닌 바로 나이다.


내가 밥을 차리지 않으면 굶어야 하고,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다음 식사 때 사용할 그릇과 수저가 없다. 빨래를 하지 않으면 입을 옷이 없고, 청소를 하지 않으면 먼지 쌓인 공기를 마셔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바깥 일과 안살림의 책임과 의무를 피할 수 없는 것이 1인 가구의 숙명이다.



나와의 약속, 혼자 살아도 지킬 것은 지킨다


나의 선택으로 스스로 꾸려가고 있는 1인 가구의 삶이지만 피곤하고 지칠 때면 게으름이 올라와 귀차니즘이 발동한다. 그러나 귀찮다고 집안일을 외면하거나 미룬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그러니 외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렇다. 나는 1인 가구의 삶을 피하지 않고 즐기기 위해 나와의 약속을 정했다.


첫째, 저녁 식사 후의 설거지는 꼭 당일날 해결한다.

오롯이 나 혼자 살아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한 싱크대를 맞이하는 것을 좋아한다. 1인 가구의 식사 준비라고 해도 전투가 일어난 듯한 싱크대의 난잡함은 다인 가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런 전투 상황을 다음날 아침에 목격하는 것이 유쾌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과 안 좋아하는 것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기왕이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다. 좋아하는 것을 얻으려면 안 좋아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40년 조금 넘게 살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 날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귀찮아도 저녁 설거지는 반드시 그때그때 하기로 했다. 이것이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나와의 첫 번째 약속이다.


둘째,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만 한다.

우리 엄마는 매일 집안을 쓸고 닦고 하신다. 엄마도 1인 가구이지만 여전히 아침 청소로 하루를 시작하신다. 나는 엄마처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진즉에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청소가 싫어 먼지 쌓인 공간에서 나를 숨 쉬게 하고 싶지도 않다. 나와의 타협점은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는 것이다. 주말 어느 날 마음이 움직이는 그때 구석구석 쓸고 닦고 먼지를 털어낸다. 어지르는 곳이라야 책상 위가 전부인데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여기저기 먼지는 쌓인다. 청소를 하고 나면 주말에 해야 할 일을 다 한 것 같아 뿌듯해진다. 나와의 적당한 타협도 받아들이되 쾌적한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나와의 두 번째 약속이다.


셋째, 인스턴트 음식은 되도록 멀리한다.

혼자 사니까 대충 해 먹기 쉽다. 그렇다고 요리책을 펼쳐놓고 9첩 반상을 차려 먹지도 못한다. 간편한 식사를 만들더라도 되도록이면 배달음식과 인스턴트 음식은 피하자고 나와 약속했다. 전자레인지를 사지 않는 이유도 그중 하나이다. 전자레인지를 들여놓으면 분명 쉽게 먹을 수 있는 즉석 인스턴트 음식을 사다 놓을 게 분명하다. 편리한 점도 있겠지만 나를 위해 먹는 것에 대해서 조금의 번거로움을 가지기로 했다. 아주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나의 건강을 지키자는 것이 나와의 세 번째 약속이다.

 

소소한 나와의 약속을 덧붙인다면 자고 일어나서 바로 이불 정리하기, 스트레칭 하기, 생수 한 잔 마시기이다. 이것은 몇 년째 꾸준히 하다 보니 좋은 습관이 되었다. 나와의 약속을 정하고 꾸준히 지켜가며 나만의 방식으로 1인 가구의 삶을 즐기고 있다.


혼자라는 귀중한 자원


《고독의 위로》에서 앤서니 스토는 '혼자 있는 능력은 귀중한 자원이다.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느낌과 접촉하고, 상실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태도를 바꾼다.'라고 말했다.


친구든 가족이든 한 공간을 공유하다 보면 부딪히기도 하고 불편함을 참아내야 할 때도 있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해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은 배려일 수도 있고, 눈치가 보여서 이기도 했다. 혼자 살게 되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서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하지만 둘이 살든 셋이 살든 서로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지켜야 하듯이 혼자 살아도 스스로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나를 존중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혼자이기에 나와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다. 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고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단순한 습관이 아닌 더 깊은 내면의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여 진짜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진짜 나를 만나게 되면 자신을 위한 배려와 존중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행동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혼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공간과 삶을 대충 아무렇게나 대하지 않는다. 혼자임에 느끼는 외로움과 상실을 뛰어넘어 혼자인 그 모든 순간을 귀중한 자원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비로소 가지게 된다.






1인 가구가 된 후에 누군가와 함께였을 때는 알지 못했던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외롭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외롭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스토가 말했듯이 혼자 있는 능력을 귀중한 자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나는 적극적으로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 내 삶을 스스로 꾸려가며 나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적극적인 애정 표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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