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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Jan 31. 2021

인생이 장르다

영화를 볼 때면 장르를 반드시 확인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공포물과 호러물을 나는 절대 선택하지 않는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소설, 시, 에세이, 자기 계발 등 다양한 장르의 선택지 중에서 마음에 끌리는 분야와 장르의 작품을 선택한다. 나의 취향이 반영된 선택은 내게 즐거움과 감동과 배움을 선물해 준다.  



인생은 어떤 장르일까?

  

2시간 남짓한 한 편의 영화와 책 한 권에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는 제한되어 있다. 한 작품에 두세 개의 장르가 담긴다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처럼 작품의 고유한 색도 잃을 뿐만 아니라 완성도 또한 떨어질 것이다. 


코미디, 로맨스, 스릴러, 호러, SF, 드라마, 다큐멘터리, 판타지, 액션 등등


작품의 성격을 나타내는 장르를 찾아보다가 갑자기 한 가지 궁금증이 일어났다.


'내 인생은 어떤 장르에 속할까?'


참으로 뜬금없는 궁금증이었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떠올리며 각각의 장르에 대입해 보았다. 


배꼽 빠지게 웃기는 코미디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고 유머가 뛰어난 사람도 더더욱 아니다. 심장이 녹아내릴 것 같은 달콤한 로맨틱을 떠올려 보지만 이것과도 거리가 멀다. 연애 초에 느낄 법한 달달함은 솔직히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로맨틱물에 어울리는 조각미남도 내 인생에서는 없었다. 


스릴러나 호러는 더더욱 아니다. 이건 참 다행이다. 귀신의 집에도 무서워서 못 들어가고 분장인 줄 알지만 관절이 꺾이는 좀비 영화 예고편도 스킵이 필수인 겁쟁이라 이런 장르는 절대 사양이다. 판타지와 SF는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니 당연히 내 인생의 장르도 아니다. 선혈이 난잡한 액션이나 누아르 물도 아니다. 


이렇게 내 인생을 장르에 하나씩 대입해 보니 해당 사항이 하나도 없었다. 밋밋하고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서운했다. 


물론 내 인생에도 굴곡은 있었다. 소소한 재미와 달달함도 있었고, 코끝 찡한 감동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스펙터클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적당히 평범하고 적당히 굴곡 있는 인생 정도이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나보다는 조금 더 스펙터클한 장르 하나쯤은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내 주변 사람들도 나와 그다지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의 삶도 적당히 평범하고 적당히 굴곡 있는 소소한 인생이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비슷한 일상,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이 일상 속에서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에서 일어날 법한 기적 같은 반전은 평범한 우리에게는 쉽게 일어나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개성 있는 어느 한 장르에 포함되지 않는 우리 인생은 재미없고 따분해서 하품만 나오는 지루한 그저 그런 작품인 것일까?  



인생이 장르다


영화나 소설이 아닌 실제의 삶을 살아내는 우리네 인생 이야기는 두 시간 남짓한 영화나 책 한 권에 담기에는 너무나 방대하다. 


과장되지는 않되 평범하고 소소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주인공마다 같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그렇다. 그것이 인생이고, 인생이 하나의 장르다.


모든 것을 아우르되 하나만 꼽아낼 수 없는 잔잔한 인생이라는 장르를 우리 각자는 만들어가고 있다.


내 인생이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하니 내게 주어진 모든 순간이 특별해지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너무 평범해서 쉽게 지나쳐버리는 일상조차도 하나의 작품에 담긴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니 괜히 즐거워진다. 


나는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결말이 정해진 작품이 아니기에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작품의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장르가 가진 매력이기도 하다. 


인생이라는 장르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매 순간을 즐기며 다음에 펼쳐질 이야기가 어떤 것일지 가슴을 열고 맞이하는 것뿐이다. 그 어떤 장르보다도 매력적인 인생이라는 장르를 사랑한다. 


그리고 기꺼이 즐기기 위해 오늘도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써 온 마음을 다해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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