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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Jan 24. 2021

노부부가 부러워졌다

주름진 두 손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사랑

요즘 들어 길을 걷다가 나의 눈길을 멈추게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사람들로 붐비는 동네 시장 골목을 혼자서 바삐 걸어갈 때 맞은편에서 손을 잡고 걸어오는 노부부를 마주칠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멈칫한다. 비좁은 인도, 이리저리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연세가 지긋하신 두 분이 손을 꼭 잡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나의 시선은 두 분의 맞잡은 손에 잠시 머물렀다가 자연스럽게 팔을 지나 얼굴로 옮겨간다. 


주름진 얼굴에는 웃음기는 없지만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연륜이 묻어 있다. 


그분들에게도 젊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풋풋한 연애를 하고 새신랑 새신부 소리를 들었던 신혼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아파 애태운 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넉넉하지 못한 사정으로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서글퍼했던 시절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녀가 말썽을 부려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르고, 어떤 날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등을 돌리고 잠든 날도 있었을 것이다. 좋았던 날 힘들었던 날 아팠던 날 울었던 날 그저 그런 평범한 날들을 모두 다 보내고 지금 여기 서울의 어느 동네 시장 골목 수많은 인파 속을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젊고 풋풋했던 두 청춘은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흘려보내고 이제 주름진 얼굴로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고 있다. 거칠어진 손이지만 두 손을 꼭 마주 잡고 서로를 의지한다. 복잡한 인파 속에서도 노부부는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찰나 같은 마주침의 순간 나에게는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손을 맞잡은 노부부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그분들이 헤쳐온 삶의 무게와 깊이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는 나이를 먹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젊고 예쁜 젊은 커플이 아닌 길에서 마주친 어느 노부부가 부러워지다니! 


삶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와 시선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이기적인 내게는 일어나기 힘든 일인 것만 같아 더 부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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