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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Feb 24. 2021

번아웃의 끝 그리고 글쓰기의 시작

삶의 끝자락에서 건져 올린 단 하나의 꿈


세상에 태어나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타고난 환경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처지에서 어찌 되었건 최선을 다한다. 

 

부모님의 기대, 자기만족, 생계유지 등 목표는 달라도 목적은 모두 같다. 잘 사는 것,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사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 앞만 보며 열심히 달린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뒤돌아볼 여유가 없다. 잠시 멈추면 금방 누군가 쫓아와 자신을 앞지를 것 같아 불안하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절대 한눈팔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며 자신을 부추긴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그저 열심히만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번아웃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삶에 대한 의욕은 사라진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그들은 더 열심히 노력해서 그 상태를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 마련이다. 

 

상황이 나빠지다가 더 나빠질 것이 없을 때 몸과 마음은 한순간 '뻥'하고 터져버린다. 그것은 건강 이상으로 나타나거나 마음의 병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번아웃은 몸과 마음이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제발 나를 좀 봐달라고 울부짖으며 비명을 지르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번아웃은 몸과 마음이 쉬어가라고 보내는 신호이다


생명이 깃들지 않은 기계도 정기적인 점검을 위해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하물며 생명을 가진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번아웃이 왔을 때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서라도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혼자만의 여행이 또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운동이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살피며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것이다. 


나는 30대 후반인 3년 전, 심각한 번아웃을 겪었다. 몸도 마음도 이미 나락으로 떨어져 움직일 힘도 일어날 마음도 없이 무겁고 암울한 터널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우울증까지 겹쳐 삶에 대한 어떠한 의욕도 느낄 수가 없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암흑 같은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번아웃 이전,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은 강했던 나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일에 몰두했다. 그것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나를 돌보지 않고 몸이 부서지라 일했다. 내게 주어진 몫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애썼고 노력했다. 그렇게 책임을 다하고 몸을 사리지 않으며 일하던 어느 날, 나는 몸과 마음에 병을 얻게 되었다. 기침은 멈추지 않았고, 허리를 펴지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말로만 듣건 번아웃이 내게도 온 것이다.

 

번아웃으로 인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자 나의 존재 사라져 버렸다. 존재 가치가 사라진 사람에게는 삶에 대한 의욕도 함께 사라진다. 그럴 때 사람은 죽음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나 역시 그랬다. 죽음이라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임을 믿고 살아왔지만,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던 나는 매 순간 죽음을 떠올렸다. 

 

어느 밤, 새벽녘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 멍하니 깨어 있던 그날도 그랬다. 몸이 아픈 것도 너무 싫고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너무 싫었다. 기분 나쁜 그 상태를 벗어나는 방법을 떠올리다가 결국 죽음이 그 해답이 아닐까 하며 그것을 붙잡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나를 스쳤다. 

 

'만약 지금 당장 죽는다면 눈을 감는 가장 마지막 순간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뭘까?'

 

질문은 생각을 하게 하는 힘이 가지고 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나의 물음에 내 마음은 답을 찾고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알고 싶었다. 살아가는 동안 이루지 못한 그 무언가가 있다면 죽는 순간에 분명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어쩌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생기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마음에 집중했다. 눈을 감고 답을 찾기 위해 마음속 깊숙한 곳까지 샅샅이 들여다보았다. 어지럽고 어두운 마음을 헤집고 답을 찾던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묵직하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놓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게 가장 후회가 될 것 같아.'

 

평소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뜻밖의 대답에 나는 깜짝 놀랐다. 삶의 모든 의욕을 잃은 순간에 내 마음에서 들려온 대답은 글로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상상 속에서 지어낸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소설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어렸지만 내가 만든 대본으로 학예회에 연극을 올린 적도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다. 그런데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나는 먼 길을 돌고 돌았다. 

 

몇 년 전에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하고 자료를 수집한 적이 있었지만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아 덮어버린 적도 있다. 다음에 더 나이가 들어 시간이 많아지면 그때 용기를 내어 보자며 포기했다. 그리고 가슴속 어딘가에 묻어 둔 채 잊어버렸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고 얻게 된 나의 오래전 꿈을 흘려보낼 수 없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내 꿈을 붙잡아야 했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신기하게도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내 몸과 마음에서 삶이, 생명이 꿈틀대며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고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나 자신을 '치유 글쓰기 작가'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프로필에도 나를 그렇게 소개했다. 왜냐하면 글쓰기를 통해 내 마음을 치유했고 삶의 벼랑 끝에 매달렸던 나 자신을 스스로 건져 올렸기 때문이다. 

 

치유 글쓰기를 통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진심으로 나를 믿어 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오랜 세월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던 나의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하게 되었다.

 

치유 글쓰기를 하며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를 이 매거진에서는 하나씩 풀어가 보려고 한다. 그리고 혹여 마음이 힘든 분이 있다면 자신을 치유하는 글쓰기를 통해 힘을 얻고 함께 마음을 나누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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