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성폭력 사건 재판 방청기-8
남성이 성폭력 용의자가 되었을 때, 파트너(아내, 애인...)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경우처럼 ‘남성’이 ‘여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이 문제는 가해 용의자의 무죄 증명 때문이라기보다는 매스컴의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파트너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사건은 범죄가 아니라 가십이 되고,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족의 가치가 강조된다. 힐러리 클린턴처럼 남편보다 ‘더 똑똑한 여성’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다. 이때 가해자의 아내는 ‘여성의 포용성, 현모양처의 인내심, 가부장제 가족의 수호자(사회의 수호자)’로 인식되고, 상대적으로 피해 여성은 그 반대 가치를 체현한 여성이 되어버린다.
-[미투의 정치학] p104 정희진 ‘여성에 대한 폭력과 미투 운동’ 중에서
정치인의 아내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
날짜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안희정이 민주당 대선 경선에 후보로 나서며 출마 선언식을 하는 자리였다. 대학로의 소극장을 빌려서 하는 행사였는데, 오랫동안 호감을 가져온 정치인이었기에 그 호감이 과연 지지로 이어질만한가, 확인하고 싶어서 나도 갔었다.
그곳에 그의 아내가 왔다. 그 자리에서 발언 순서가 주어졌을 때, 그는 남편을 괜찮은 ‘제품’이라 자신 있게 소개한다는 말을 했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안희정의 아내는 꽤 쿨한 태도로 남편의 ‘사소한’ 인간적 약점을 섞어서 ‘그래도 정치인으로서는 쓸만한 재목’이라고 했었다.
민주원 씨. 그는 교편을 놓고 최근에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을 위해 상담활동도 한다고 했다. 설령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가겠다는 인터뷰도 했다.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으로 보였다. 안희정이라는 정치인이 지나온 시간을 아는 지지자였기에 그런 정치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 자신이 아닌 남편의 그림자가 된다는 것이 어쩌면 저 여성에게 참 힘든 일이었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2018년 3월 5일, 김지은 씨의 뉴스룸 출연 직후에 지지자 몇과 모여 울다가 화내다가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또 다른 지지자로부터 “민 여사님이랑 통화했는데 김지은 씨의 남자관계를 조사해 달라고 하더라.”라는 내용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우리는 그렇게 한 여성의 명예와 상처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었다.
2018년 7월 13일 서울 서부지법 303호.
안희정의 아내 민주원 씨가 피고인 측 증인으로 나온 날이었다.
그 전 날 이미 피해자에 대한 온갖 음해성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보다 더 한참 전, 안희정을 ‘여전히’ 지지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페이스북 그룹에서는 ‘마누라 비서’니 ‘평소 여성 지지자들을 싸늘하게 대했다’느니 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은 민주원 씨의 증언에 등장한 것을 보면, 기사나 지지자 그룹의 뒷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원 씨는 다른 증인들과 달리 방청객이 다니는 문이 아니라 별도의 통로를 통해 법정에 들어섰다.
서울 서부지법 부장판사 조병구 씨는 ‘증인 역시 또 다른 피해자(?)다. 신문할 때 유념하라’고 미리 주의를 주었다. 또 다른 피해자라.. 가해자를 안희정으로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안희정은 결혼한 처지에 감히 ‘정조’를 지키지 못하여 외간 여자를 위력으로 범했으니 부부간의 신의를 어긴 책임 역시 지는 게 마땅했다. 하지만 민주원 씨는 자신을 ‘그 피해자’의 위치에 두고 싶지 않은 듯했다.
신문은 먼저 피고인 측 변호인이 시작했다.
첫 번째 질문: 피해자를 알게 된 것은 언제인가.
답: 2017년 2월. 아들을 통해서 들었다. 나를 칭찬했다고 하기에 처음엔 그냥 넘겼는데 아들이 여러 번 이야기해서 의도가 있다고 의심했다.
두 번째 질문: 피해자를 실제로 만난 건 언제인가.
답: 남편 출근할 때 배웅을 원래 잘 안 나가는데 한 번 나가봤다. 피해자는 나를 못 보고 나는 문 틈으로 봤다. 피고인에게 달려오며 애인 만나러 온 것처럼 홍조를 띠고 달려왔다.
이때 판사가 제지했다. ‘애인을 만나러 온’ ‘홍조’ 같은 말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기도 했으며 자의적인 해석이 들어간 문장은 법정 진술로도 부적절했다.
예전에 지지할 때도 느꼈지만 안희정도 민주원 씨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할 때 생활감이 묻어나는 단어를 쓰다가 문득 마치 책에서 인용해온 듯한 문어적인 표현의 문장을 쓸 때가 있었다. 안희정이 ‘선의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던 때 민주원 씨가 함께 방송에 나와서 ‘소신이 새처럼 날아다니는 남자였다면 진작에 버렸겠죠’라고 말했던 경우처럼. 부부가 그런 점은 닮았네, 생각했는데 그 날 법정에서도 그랬다.
홍조를 띠고 달려왔다, 내 남편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겠다, 어스름한 빛, 단 한 번도 남편을 의심한 적이 없어서, 여자라면 다 알잖아요 등등...
마치 아침 드라마의 대사 같은 말들이 연이어 나왔다.
한 때 안희정 지지자로 비교적 열심히 지지 현장에서 함께 했던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나왔다.
피해자 김지은 씨가 여성 지지자들에게 좋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지지자들이 그를 ‘마누라 비서’라고 불렀다는 것이었다.
사건 전에 내가 김지은 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경기도 모처에서 지지자 모임을 했을 때였다. 2017년 추석이 지난 직후였던가, 그랬던 것 같다. 안희정이 수행과 함께 모임에 참석했고 지은 씨도 함께 왔다. 그 날 여성 지지자 한 분이 먼저 지은 씨에게 말을 걸어 함께 사진도 찍었던 걸로 기억한다. 안희정과 수행들이 함께 떠난 뒤에는 지지자들이 ‘지은 씨가 요즘 얼굴빛이 너무 안 좋다. 일이 힘든 것 같다’라는 걱정을 나누기도 했다.
나중에서야 안희정의 외부 행사에 쫓아온 지지자가 무리하게 사진을 찍거나 선물 전달과 과한 친밀감 표시 등으로 일정 운영이나 수행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어 김지은 씨가 맡은 업무대로 이를 제지했고 이 때문에 지지자 몇이 불만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최소한 ‘마누라 비서’라는 단어를 정상적인, 그러니까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성 정치인 안희정’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다면 결코 썼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여혐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이 실제 있었다고 해도, 과연 그런 사람이 일하는 여성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올바르게 그 행동을 평가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행동을 제재한 수행비서가 남자였다면, 싸늘한 눈빛을 보낸 비서가 남자였더라도 그들이 그런 불만을 갖고 뒷말을 했을까. 그런 사람이 본 ‘여성 수행비서 김지은’은 얼마나 왜곡된 모습이었을까.
그 날 민주원 씨와 피고인 측이 중점을 둔 것은 바로 ‘상화원’이었다.
굳이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다시 적고 싶지 않다. 민주원 씨는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심경글에서 ‘남편을 깨워서 데리고 가려고 했던 것 같다’라고 했지만 그런 일은 실제 벌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민주원 씨는 법정에서 ‘침대 발치에서 3~4분간 바라봤다’고 주장했는데 왜 아내 옆에서 자는 남자를 깨우러 들어온 여자가 그 긴 시간을 쳐다보는데 허비했을까. 민주원 씨의 진술은 이래저래 모순이다.
심지어 민주원 씨는 그 날 신문 도중 자신의 진술 일부를 번복하기도 했다.
민주원 씨는 2층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 발치에서 3~4분을 쳐다봤다고, 피고인 측 변호인의 질문과 검찰 측 질문 때 계속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에서 다시 한번 ‘올라오는 소리까지 들었다면 5~6분가량의 시간 동안 가만히 있었다는 이야기다. 꽤 긴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증인(민주원)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건가?’라고 묻자 마지막에서야 민주원 씨는 “3~4분보다는 짧았을 수 있다.”라고 얼버무렸다.
상화원과 관련해서는 이런저런 할 이야기는 많지만 굳이 길게 늘어놓고 싶지 않다. 그곳은 범죄 현장도 아니었으며 성범죄와 관련해 무엇도 증명할 수 없는, 본질과는 무관한 가십일 뿐이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이렇게 판단했다.
민주원의 원심 법정 진술 등만으로는 피해자가 피고인 부부가 자고 있는 침실에 몰래 들어가 피해자 부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울뿐더러 설령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로 볼 수 없다거나, 그러한 사정이 피해자의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만한 사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아, 한 가지.
항소심 재판부가 민주원 씨의 진술 신빙성을 부정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가 뉴스룸 보도 직후 피해자의 행실 조사를 시도했다는 증언 때문이었다.
재밌는 건, 민주원 씨는 7월 13일 법정 진술 당시 그 사실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검찰 측에서 “00 씨에게 전화해서 피해자의 남자관계 등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나”라고 묻자 민주원 씨는 짧게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최근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런 전화를 한 적 있다고 말했다. 뭘까, 위증을 시인하는 건가.
방청기를 정리하면서 민주원 씨의 증인신문에 대해 몇 번을 쓰려다 멈췄다. 그 날은 그야말로 2차 가해의 장이었고 그의 증언은 피해자에 대한 음해의 땔감으로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다. 반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날 재판정에서 벌어진 상황을 좀 더 생생히 적어야 한다고, 기사에는 누락된 것들을 적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쓸 수 없었다. 나나 다른 여성 노동자들이 공감하는 피해자를, 여성인 민주원 씨가 남성 기득권의 시선으로 단죄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해할 수 없었고 한편으로는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서두에 인용한 정희진 선생님의 글처럼, 한 때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보이던 민주원 씨가 ‘가부장제를 수호하는 아내’ 민주원이 되기를 선택했다는 것에 참담함이 밀려들었다.
민주원 씨는 페이스북에 ‘심경글’을 두 차례나 올리며 피해자 재판을 계속하는 중이다. 읽는 사람마저 비참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그는 자신과 아이들(그 아이들 이미 성인입니다만)의 ‘명예’를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민주원의 명예, 란... 불륜을 저지른 남편의 아내가 되어야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일까. 누구도 남편의 성범죄를 아내의 죄로 보지 않는다. 어째서 그는 아내 민주원과 그냥 인간 민주원을 분리해 낼 수 없게 된 걸까, 모르겠다.
다만 안희정 성폭력 사건을 지켜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은 하나 있다.
성범죄 가해자가 스승이든, 상사이든, 가족이든, 지지했던 정치인이든... 얼마나 친밀했고 우호적인 관계였든 간에 누군가는 다른 선택을 한다. 그를 비호하며 그와 운명 공동체로 묶이는 것이 아닌 다른 선택은 늘 가능하다.
나는 거기에 ‘아내의 명예’ 이전에 ‘사람의 명예’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 개인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지킨다는 건 ‘옳은 선택’을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이 움켜쥔 것에 연연해 불의한 인생을 살지 않는 것... 그런 게 어떻게 명예가 아닌가.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서는 것이야말로 불명예일 것이다.
가족이든 제자든 부하든 지지자든 팬이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오랫동안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해왔고 또 연구활동가인 권김현영 선생님의 글(페이스북 링크)을 모두 꼭 읽어주면 좋겠다.
가부장제란 이렇게도 잔혹한 제도이다. 여자와 여자를 싸우게 하고, 폭력의 문제를 사생활로 둔갑시키며, 여성이 말할 수 있는 자리를 오직 희생적인 아내와 어머니의 위치에 한정시킨다.
.... 하지만 아무리 강고한 이성애제도 가부장제 사회라고 해도 가해자의 가족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또다른 가해자가 되는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놀라운 예외도 나타났다. 미안해요, 정말. 이렇게 어린 아가씨를... 나는 애 아빠라 할 수 없지만... 이라고 말 끝을 흐리며 눈에 연민과 슬픔이 가득한 채 피해자의 손을 꼭 잡고 나가는 분도 있었고, 집단 성폭력 사건에서 망을 보는 역할로 공범이 된 아들이 억울해하자 그 자리에서 억울해야 할 건 그때 당한 아이지 네가 아니라며 꾸짖었다는 어머니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