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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매이 May 18. 2019

86세대가 쓰는 또 한 편의 20대 개새끼론

열받아서 쓰는 책 리뷰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대의 교수는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을 읽다가 그 만화 속 군상을 매일 강의실에서 마주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논문을 쓰고, 그 논문이 서울에 근거를 둔 유력 매체들에게 관심을 받자 다시 460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펴낸다.


저자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고 했다.


왜 지방대생은 다른 세계를 꿈꾸지 않는가?


나도 시사인의 기사를 통해 그가 쓴 논문 일부와 저자의 인터뷰를 읽고 이 책을 기다렸다. 왜냐면 저자를 놀라게 만든 ‘알지 않으려는 의지’ ‘성찰적 겸연쩍음’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 팽배한 그 캠퍼스가 바로 내가 졸업한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답을 알고 싶었다. 왜 우리에겐 다른 세계를 상상할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는지를.

그래서 책을 샀다. 그리고 빠르게 읽고 내가 기억하는 한 예스24에 최초로 한줄리뷰도 남겼다.

읽지 말라고....






책은 지방대 재학생과 졸업생, 그 부모들을 인터뷰 하는 형식으로 쓰여져 있다.

저자는 ‘서사적 인터뷰’를 택한 이유로 “서사적 인터뷰는 연구자의 학술적 또는 과학적 언어에 특권을 주지 않는다. 대신 연구 참여자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는 물론 지금까지 연구 주제에서 배제되고 누락되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정해주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는 연구자이기 이전에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된 청자일까?


저자는 책 내내 인터뷰이의 말을 인용하고 이어 평가하기를 반복한다.


“따분한 걸 싫어해요, 그리고 한 자리에 오래 있는 걸 힘들어해요. 그러다보니 공부를 제대로 못했어요.”
따분한 걸 싫어한다는 것은 상황에 자신이 주의를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덕배는 그래서 항상 상황을 느슨하게 만들어 주의를 집중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p72

“그냥 평범하게 남들만큼 벌면서 결혼하게 된다면 결혼 생활은 제가 그래도 좀 가정적으로 잘할 수 있다는 그런 마인드거든요. 돈은 한 250?”
하지만 현실은 140만원을 받는 비정규직이다. 이를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 친구를 둘러봐도 모두 박봉에 장시간 노동으로 힘들게 산다. 그에 비하면 나는 낫다. 나에게는 자유 시간이 있으니까.
인식은 자신의 자아를 절대로 경쟁의 장 안에 설정하지 않는다. 해봐도 안 된다는 그런 성찰적 겸연쩍음이 강하다.
-p136


지방대생의 부모를 인터뷰하면서 (이건 학생인 자녀들에게 맡긴 듯 하다) 첫 질문은 ‘당신 삶의 가치는 무엇입니까?’였다. 부모들이 ‘성실하게 사는 것?’ 등으로 답하자 저자는 ‘가치를 물었는데 삶의 태도를 답한다.’고 대단히 의미심장한 듯 분석한다.

자, 다들 눈 감고 누가 저 질문을 했다면 어떻게 답 했을지 떠올려 보자. 사실 나는 ‘삶의 가치’가 뭘 말하는지 해석하기도 힘들고 질문자의 의도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특정한 것을 명사로 말하라는 건지, 아니면 행동의 동기를 묻는건지, 아니면 신조인지 헷갈렸다. 애초에 모호한 단어를 사용하고, 답변하자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충분히 성찰하고 있지 않다.”로 평가하는 셈이다. 질문 자체가 저자의 편견으로 파둔 함정 아닐까.


책 속에 등장하는 지방대생 가운데 저자가 가장 긍정하는 삶은 서울 중견 광고회사에 취직한 ‘채린’이다.


서울에 살면서 지방대생이라는 낙인을 의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강하게 응대한다.
“전혀 그런 생각 없고 만약에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이런 모습을 통해서 증명하고 그런 건 일반화의 오류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앞에서 보았듯이 채린은 습속을 따르기 보다 목적 수단 도식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나선다. 왜? 그건 알지 않으려는 의지 대신 알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p226

저자에게 삶의 가치는 도전과 경쟁인 듯 하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지방대생의 ‘적당주의’에 대비해 IN서울의 ‘몰입주의’를 들먹인다. 그런 그에게 채린은 인서울 하고 몰입하는, 그러니까 성찰하고 도전하는 진짜 젊음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일단 ‘인서울’해서 ‘중견기업’쯤 취직 해야 한다는 거다.

서울에서 월급 100만원 남짓 받으며 방송작가로 일하는 또다른 졸업생은 ‘적당주의’로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에 수동적으로 처한 인물이다.

지방에서 아이를 키우며 관리자직급에 오르고 대학원에서 학위를 따고 강의까지 나가는 졸업생 역시 지역의 흔한 가족주의의 수혜자일 뿐이다.


사실 읽다보면 저자가 말하는 적당주의, 가 대체 뭔지 알 수 없다.


일자리를 구할 때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선택한다. 사회복지 법인, 영어학원, 대학 연구소, 사회적 기업, 시민단체가 그 예다. 그런 곳에서는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이 어느 정도 통용된다. 지역에 있는 지방대생 대부분은 공무원이 되어 저녁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상황에 적당히 관여하면서 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입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적당하게 공부해서는 안된다. 단기간에 엄청나게 몰입해야 하는데 이것을 하지 못한다.

-p264


공무원 열풍이 지방대생 한정이었던가. 게다가 사회복지 법인과 영어학원 등 거론한 업계가 어째서 그의 눈에는 적당주의로만 보이는가.

무엇보다 저자는 지방대 졸업자가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가 왜 주로 저런 곳인지 결코 질문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제자들에게 대학원을 권하면서 그 제자가 ‘지방대 대학원 나온다고 교수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대답해도 자신이 속한 학계에 무엇이 문제인지 성찰하지도 않는다. 그저 ‘해도 안 될 걸 이미 아는, 성찰적 겸연쩍음’ 으로 취급하고 만다.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통계 인용조차 없이, 너댓장 할애했을 뿐이다.


결국 나는 이 책에서 읽어낸 저자의 메시지는 하나, 다.


지방대생이여,
더 노오오오오오력을 하라!




대구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독립해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10여년 째 살고 있는 곳이 서울이다 보니, 나도 사실 대구에 대해 잘 모른다.

다시 고향에 대해 궁금해 진 건, 서울에서 방송작가로 생활하다 낙향한 친구를  만난 이후였다.  #METOO 고발이 한창이던 때, 그래서 우리 업계도 꽤 긴장해서 여러 지침이 내려오던 때, 군 단위 지역에 사는 친구는 “여긴 그런 영향 전혀 없어요. 여전히 성희롱 수준의 음담패설에~”라고 답답해 했었다. 지리적 격차가 만드는 문화의 격차, 인식의 격차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리고 미투운동 이후 사법부의 전향적이고 진보적인 판결이 이어지는 와중에 지역에서는 정신과 의사의 환자 그루밍 성폭력이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더더욱 궁금해졌다. 무엇이 이 격차를 만드는가.


나는 그 답을 찾고 싶었다. 무엇이 서울 외 지역을 고인 물로 만드는지, 무엇이 청년들로 하여금 더 넓은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드는지, 무엇이 변화의 물고를 막고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펼친 책이었다.

그런데 책의 답이 ‘서울은 큰 물이고, 경쟁에서 승리하며, 몰입하는 것이 큰 삶’이라니.

지역의 인재는 지역을 떠나야 하나. 모두 과잉경쟁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불살라야 하나. 경쟁하지 않고 ‘소박한 행복’을 말하는 건 적당한 자기 합리화인가. 이 모든 격차가, 지역의 한계는 결코 수정될 수 없으니 청년들이여 알아서 떠나라... 가 지방대 교수가 할 말인가.


사회 구조가 개인의 삶을 100퍼센트 결정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 역시 존재한다. 그러니까 둘 다 제대로 다뤘어야 했다. 460페이지에 육박하는 책을 낼 거라면 최소한 절반은 지역의 산업과 문화를 제대로 점검했어야 했다.

과잉경쟁 사회에 대해, 안전망 없는 국가에 대해, 고도 성장을 위해 유보해온 부작용이 밀려드는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 때는 독재정권에 화염병도 들었는데 짱돌 하나 못 드는 20대 개새끼!”를 외치는 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잘난 86세대가 또... 대학진학율 20%남짓인 때에 대학 문턱 넘은 자신들이 마치 시대의 대변자인양 구는 그 86세대들이 또... 또.. 또 나무한테 미안한 짓 했네, 라는 게 [복학왕의 사회학]을 읽는 지방대 졸업생이자 88만원 세대인 나의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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