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나만의 카이로스를 재정비해보는 사람

천천히, 나의 리듬을 되찾아가 보는 10월의 끝자락

by Maybe




한 달여간의 시간이 빠르기도, 느리기도 했다.
시가족이 보스턴에 머무르다 떠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몸도 마음도 한 박자 더디게 움직였다.

달력은 벌써 다음 장으로 넘어갈 채비를 하는데,
어째 내 시간만 다르게 흐르는 기분이다.

사실 나는 하루를 최대한 촘촘하게,
아무도 시키지 않은 숙제를 부지런히 해내야
비로소 하루의 끝에 시원한 꿀잠을 예약할 수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며 잠자리에 눕는 그런 특성을 지닌 것이다..

하지만 그 촘촘함에 대한 강박을 내려두기로 한 지도 꽤 되었다.
그럼에도 집 안에만 있어도 종종걸음을 걷기 일쑤다.
집순이로 지내도 하루만 오천 보는 기본인 사람의 특징이다.
그래서 요즘은 의도적으로 차분해지기로,
눈앞에도, ‘찬찬히 살자’라는 모토를 붙여두었다.
모든 강박을 잠시 내려놓기로 한다.

지난 한 달은 정말 바빴다.

멀리 여행 온 가족을 챙겨야 했고, 더 좋은 걸 공유하고 픈 마음에서도

분주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브런치에 매주 글을 올리겠다는 다짐도
너무 쉽게 무너졌다.
루틴을 만들어가기까진 분명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루틴이 무너지는 데는 한 달이면 충분했다.
직접 실험해 본 결과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단 하나,

강박을 내려놓되 하루를 천천히 길게 살아내는 일.

나만의 시간 리듬을 되찾는 일이다.


올해의 마지막 두 달은
나만의 카이로스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시간의 속도와는 무관하게,

남들의 삶의 속도와도 비교하지 않고,
내게 질적인 충족감을 주는 일들로 채워보고 싶다.

흐리멍덩하게 보낸 시간도 필요한 시간이었으니,
이제는 촘촘한 시간도, 느슨한 시간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진짜 나로 살기 위한 준비와 몰입,
그리고 되돌아봄의 순간으로 채워보고자 한다.

나는 브런치에서 ‘마음을 다듬는 나만의 노트’를 연재 중인데...
오늘은 그 노트에 적을 내용이지만,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을 여기에 함께 두서없이 늘어놓고 싶다.


난 이유 없는 분주함 속에서 하루를 보낼 때가 많다.
아무도 나를 쫓지 않지만,
쫓기듯 살아가는 나만의 시계를 이제는 풀어내야 할 때다.
너무 당연하게 굳어진 습관들,
보이지 않게 나를 묶어둔 속박들로부터.


나는 샤워는 천천히 즐기지만
바디로션을 바를 때면 늘 급하다.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줄지어 떠오르고,
로션은 흡수되기도 전에 군데군데 뭉친다.
드라이기도 늘 급하게 사용해서
머리카락엔 덜 마른 물기와 엉킴이 남는다.
한때는 샴푸나 트리트먼트 탓이라 여겼지만
문제는 잘못된 습관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어김없이 어딘가 엉켜 있는 머리칼만큼
나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무언가에 꽂히면 곧장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좋은 걸 알면 한국의 가족이나 친구에게,
곧장 알려야 마음이 놓이는 급한 마음.
내가 빨리 챙겨야 모두가 건강할 것 같은
이상할 만큼의 집착도,
모든 걸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오만함도
결국은 나였던 것이다...

분주함과 불안함이 나의 일부처럼- 살아온 시간들.

돌이켜보면, 왜 그랬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다만 그 사실을 바라보는 마음이 별로였고 공허했다.

그런 공허함이 싫어서, 불안함 때문에—

어쩌면 더 매일을 촘촘히 채워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속도를 줄이자.
생각의 흐름도, 움직임도 간결하고, 심플하게 살자.
그래야 비로소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만의 시간, 나만의 카이로스 안에서 살아간다는
그 충족감으로 내년을 설레게 맞을 수 있을 테니까.

10월의 끝자락.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렸는지 몰라

난처한 얼굴로 서성이지 않으려 한다.

오늘 점심도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해 차렸고,

오후에는 의도적으로 뜨거운 차를 끓여-
창밖을 음미하며 한 모금씩 한다.
느린 템포의 음악을 튼다.
시계는 되도록 보지 않는다.

글도 서둘러 쓰지 않는다.
일부러 더 천천히,
마음을 들여다보며 쓴다.



오늘, 나는

내 시간을 나만의 카이로스로 건져 올리는 사람이라고
나를 정의해 본다.

의도적인 삶은 곧 의식적인 삶이다.
의식하지 않고 흘려보내면,
너무 쉽게 세상의 시간들에, 현란한 것들에,

내 마음을 쉽게 내어주게 된다.


나는 어떤 내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서-
며칠째 품고 있는 이 질문을
오늘은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 질문에 대한 생각은 또 이어서 다음 글로 남겨두려 한다.


10월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