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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 Jun 01. 2016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봄은 어디에

카미유 피사로, <천을 너는 여인>과 <봄, 꽃핀 자두나무>

누가 뭐라도 내게 3월부터 5월은 공식적인 '봄'입니다.


3월이 되면 두터운 코트와 패딩 점퍼들을 정리해서 세탁소에 맡기고, 조금 이르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봄의 자켓들과 트렌치 코트를 꺼내입습니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은 3월 중순쯔음부터 조금씩 고개를 내밀죠. 낮의 햇살이 다르고 하늘빛이 달라져요. 헐벗고 있던 나무들에 하루가 다르게 초록색 새 잎이 나고, 4월쯤되면 하얀 목련에 꽃망울을 터트립니다.

노오란 산수유가, 여리여리한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나들이 시즌이죠. 주말엔 가방에 작은 피크닉 매트를 빼놓지 않고 챙겨 넣고 호시탐탐 소박한 소풍을 기다립니다. 연분홍색 벚꽃이 지고나면 조금 더 진한색의 꽃들이 하나둘 피어납니다. 화사한 철쭉이 본격적인 개화를 시작하고 새빨간 덩쿨장미가 필 준비를 시작하죠. 봄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 사랑스러운 봄봄봄.

카미유 피사로, <천을 너는 여인>

피사로의 <천을 너는 여인> 속 여인과 꼬마의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아마도 저 여인은 꼬마의 엄마겠지요? 종알종알 쉴새없이 묻고 떠드는 꼬마에게 엄마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열심히 대답을 합니다. 궁금한게 많을 나이죠. "이게 뭐야?" "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거예요.


"엄마, 뭐해?"

"빨래 너는 거야. 우리 아기 어제 입었던 옷들을 엄마가 빨았거든."

"빨래는 왜 해?"

"응, 옷에 붙은 먼지 친구들이랑 얼굴 친구들이랑 빠빠이하고 보송보송 깨끗해지라고."


그림 속 아이와 엄마의 대화를 상상해봅니다.

수레에 아직 한가득 새로한 빨래가 보이네요. 아마 둘의 대화는 한참 더 이어지겠죠?


저희 엄마도 봄맞이 빨래를 하셨어요. 그림 속 여인처럼 부지런히 손을 놀려 겨우내 입었던 옷들을 깨끗이 빨고 곱게 개서 옷장에 넣으셨죠. 그리고 옷장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던 얇은 봄옷들을 꺼내 빨아서 널었죠.

이제 막 탈수를 마친 빨래들을 탁탁- 털어널던 엄마와 그 소리를 기억합니다. 옥상에 있던 길다란 두 줄의 빨래줄 가득 옷들이 널리고 저와 동생은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놀았죠.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참 좋았습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간질간질했어요.


아마, 그래서인거 같아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옷을 정리하는 습관. 서둘러 봄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


 

카미유 피사로, <봄, 꽃핀 자두나무>


그런데 올해엔 당최 봄의 사랑스러움을, 봄의 따듯함을, 봄의 아늑하고 온화한 정취를 즐길 시간이 없네요. 추위는 빨리 가시는듯 했어요. 이제 봄이구나 했더니 연일 계속되는 미세먼지. 잠깐만 돌아다녀도 목이 칼칼하고 눈이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었지요. 창문을 열어두면 공기청정기가 씽씽씽 신나게 돌아갑니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봄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언제부터 이렇게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며 미세먼지 농도까지 체크해야 했던 걸까요. 휴. 한숨이 절로 납니다. 그래도 나는, 우리는 괜찮아요. 푸르른 봄, 따뜻한 파스텔빛 봄의 추억이 많이 있잖아요.  향기로운 아카시아나무가 많던 숲을 뛰어놀았던 봄의 기억이 있고, 개나리가 많이 피던 학교 근처 공원에서 친구들과 즐겼던 소풍의 추억이 있고, 끝을 모르고 피어있던 벚꽃 거리를 남자친구 손을 잡고 걸었던 설레임을 경험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이제 꼬꼬마인 우리 아이들이 따듯함 대신 '미세먼지'의 계절로 기억할까 걱정이됩니다.


피사로의 따뜻한 봄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벌써 봄이 다 지나갔다는 것이 못내 아쉬워집니다. 새로 장만한 피크닉 매트는 아직 펴보지도 않았는데, 세일하길래 사둔 도시락통은 아직 개시도 못했는데 말이에요.

아무래도 올해는 봄을 좀 연장해서 즐겨야겠습니다. 이제 미세먼지도 조금 괜찮아졌으니, 낮엔 퇴약볕이 한여름 같긴하지만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봄'이니 봄의 아침을, 봄의 저녁을 즐겨보아요.


일단 오늘은 눈으로 먼저!

피사로의 봄의 그림들을 즐겨볼까요.


<밭에 있는 여인(에라니 초원에 비추는 봄 햇살)>
<에르미타주의 정원 한 구석>
<퐁투아즈 부근 풍경>



<자화상>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는 1830년에 태어난 프랑스화가입니다. 전원을 사랑한, 사랑스럽고 따뜻한 한 풍경화를 많이 남긴 화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클로드 모네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 런던으로 함께 피난가서 그곳에서 영국 풍경화를 함께 연구했대요.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모네의 풍경화들과 피사로의 그림들이 어딘가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아마 그 영향도 있었겠지요.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였던 피사로. 꼬장꼬장 잔소리도 많으시고,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한 자화상 속 외모와 달리 그의 그림들은 하나 같이 '휴식' 그 자체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그림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운 하루를 선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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