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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 Jun 01. 2016

가끔, 엄마가 유별나게
보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메리 카셋, <딸에게 책 읽어주는 오귀스트>

 

엄마와 떨어져 산 지 올해로 꼭 십오 년째입니다.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는 딸이 내심 자랑스러우면서도, 못내 염려가 되어 손을 꼭 잡으며 

'하루에 한 번씩은 전화 꼭 해라' 하고 당부하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 우리 엄마, 지금보다 훨씬 젊었는데 말이지요.


집을 떠나온 뒤로 15년이라는 시간동안 엄마와 제대로 시간을 보낸 건 몇 일이나 될까요?

집에 내려가면 늘 친구들을 만나느라 바쁘고, 엄마 아빠가 사는 집에 가면 오히려 잠자리가 불편해 당일치기로 다녀올 때도 많지요. 엄마 얼굴을 제대로 보는 건 그나마 다시 올라가기 전 용돈을 그냥 타기가 머쓱해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던, 그때 그 순간 뿐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하긴, 그건 학교 다닐 때 이야기이고, 요즘은 또 다르지요. 피곤하다. 일이 많다. 친구 결혼식이다. 선배 애 돌잔치다 해서 한달에 한번은커녕, 명절과 엄마 아빠 생신날 맞춰 내려가가는 것도 생색아닌 생색을 내게 됩니다. 쳇,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말이예요. 


어려서 엄마는 꽃을 사랑하고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분이셨습니다.

늘 소녀 같고,  작은 일에 상처도 잘 받는 저와는 정반대 스타일의 '천상 여자' 이지요.

매일 저녁을 먹고 나면 엄마는, 저를 무릎에 앉혀 놓고 동화책을 읽어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엄마는 그 자체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어린 딸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딸의 교육을 위해서 같은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그저 동화책을 본인이 낼 수 있는 가장 편안하고 예쁜 목소리로 어린딸에게 들려주고, 

어린 딸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 하셨을 겁니다.

속 모르는 딸은, 그저 그런 동화책 대신 텔레비젼 만화영화가 보고 싶어 안달이었지죠. 

얼른 가서 보고 싶은데 잡고 있는 엄마 때문에 입은 뾰루퉁하게 나와서는 말이지요.


그때 그 시절 저와 엄마는 아마 메리카셋의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오귀스트> 그림 속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저 지금 이 시간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은 온화한 미소의 엄마와, 한껏 골이 나 있는 딸의 모습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제모습과 꼭 같지 싶네요.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오귀스트>

재밌는 건, 지금 제 나이가, 꼭 그때의 엄마의 나이쯤 되었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저희 엄마는 제 나이 때 이미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학부모였네요.)

메리 카셋의 그림을 보고 있으니 엄마가 무척이나 보고 싶네요.

왜 그럴 때 있지 않나요? 가끔,  유난스러울 정도로 엄마가 보고 싶은 날. 

엄마와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고, 맘에 드는 책도 두어권 사드리고 싶습니다. 

집에 가는 길엔 동네 꽃집에 들러 엄마가 좋아하는 연분홍색 리시안셔스도 한다발 사들고 가서 엄마를 한껏 웃게 만들고 싶어지네요.

막상 만나면 따듯한 말 한마디도 못하는 저인데, 생각만은 거창합니다.

에효, 늘 엄마와 함께 있지 않을 때만 효녀지요.


오늘 아침 엄마에게 문자를 받았습니다.

"우리 딸, 잘 잤니? 밥 잘 챙겨먹고, 문단속 잘하고! 우리 애기 사랑한다."

20년 넘게 들어오는 레퍼토리 '밥 챙기기' '문단속 잘하기' 

어려서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나의 호칭, '우리 딸', '우리 애기' 

똑같은 말, 똑같은 호칭인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엄마 눈엔 제가 마냥 어린아이 같은가 봅니다.


근데 엄마는 알까요?

메리 카셋의 그림 속 엄마처럼, 우리 엄마가 나에게 책을 읽어주던 시절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사실말이예요.

엄마가 알면 아마 깜짝 놀랄겁니다.

쉿. 당분간은 엄마에겐 비밀입니다.



미국 여류 화가인 메리 카셋은 유독 엄마와 딸을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았다고 해요. 따뜻하고 온화한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 생각이 절로 납니다. 나의 아이 시절이 떠오르고, 엄마의 젊은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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