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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 Sep 21. 2024

독서가 돈 안 드는 취미라고
누가 그랬나요

저는 상위 1%입니다. 소득 수준이냐고요? 아이고, 설마요. 과거 수능성적일까요? 하, 그랬으면 참 좋겠습니다만, 매년 날아오는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구매 통계입니다. 상위 1%라니, 너무나 황홀한 표현인지라 잠깐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정신 차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아니, 내가 언제 이렇게 책을 샀지?’

‘알라딘 서점에서만 산 것도 아니잖아. 그럼 대체 책에 돈을 얼마를 쓴 거야.’


대체 누가 그랬나요. ‘독서’가 돈 안 드는 취미라고.

 ‘왜 책을 사서 읽냐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될 일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네, 맞아요. 그래서 저도 도서관을 자주 이용합니다. 이용하는 도서관에 없는 책은 타 도서관을 통해 빌리는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하고, 신간 도서는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는 적극적인 도서관 이용자입니다. 거의 매주 도서관에 방문에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대출 가능 권 수만큼 또 빌려오곤 해요. 그런데 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구매 욕구’를 마구 자극한다는 거 아시나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다 보면, 살 이유들이 다양하게 생겨납니다. 특히 마음에 쏙 드는 책들을 읽다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가 없어요. 밑줄도 긋고 플래그도 붙이고 메모도 하며 자유롭게 읽고 싶어집니다. 특히 삶에 참고하고 싶은 주옥같은 문장들이 그득하게 담긴 책을 읽을 때면 ‘아, 이건 사야 돼’ ‘이건 곁에 두고 생각날 때 마다 펴 봐야 해’ 하고 마음을 홀라당 뺏긴 채로 보석 박힌 눈이 되어 온라인 서점 앱을 클릭하게 됩니다.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았다면, 몰랐다면 어쩌면 사지 않았을 그 책은 머지않은 시간 안에 집으로 배송됩니다.


뭐 어디 도서관 탓만 할 수 있나요? 책을 사야 할 이유는 우주의 별들의 수만큼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명화가 잔뜩 삽입되어 있는 예술서적이나 예쁜 일러스트가 들어간 책도 구매를 참기 어렵습니다. 그림 하나하나가 작품처럼 느껴져서 ‘이렇게 멋진 그림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갔는데 안 사면 오히려 손해 아닌가? 나는 책을 사는 게 아니라 그림을 사는 거야. 그림을 사는데 이 가격이면 싸다 싸’ 하는 내적 합리화 과정을 거쳐 어느새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고전 문학도 꾸준히 구매해야 하는 책 중 하나죠. 고전문학은 대부분 도서관에서 원하는 때라면 언제든 대출해서 볼 수 있을 만큼 많이 비치되어 있고, 대출자들도 많지 않은 편인데 굳이 왜 사냐고요? 모르는 말씀. 제게는 딸이 두 명 있는데, 고전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책이니 제가 읽었던 책으로 딸들과 함께 읽는다면 너무 멋지지 않을까요? 엄마가 밑줄 쳐둔 문장을 눈으로 읽고, 마음에 담고, 손으로 쓸어도 보며 ‘우리 엄마는 이 문장을 좋아했구나’ 하고 아련한 기분에 젖을 수도 있겠죠. 고전은 딸들을 위한 선물처럼 구매하곤 합니다. 물론 제가 제일 먼저 읽지만요.


좋아하는 작가님의 신간이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입니다. 그동안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과 깨달음에 대한 보답이랄까요? 컬렉션의 완성이랄까요? 그동안 쭉 모아왔던 작가님의 책이라면, 암요 사야죠! 예약구매로 걸어두고 집으로 책이 오길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은 예닐곱 어린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구태여 다른 점을 찾자면 내돈내산이라는 점 정도?


온라인 서점 말고 독립서점도 많이 이용하는 편이에요. 여행을 가면 반드시 그 지역만 있는 서점에 먼저 들릅니다. 여행 동안 읽을 책은 거기서 구매해요. 온라인서점이나 대형서점이 ‘뭐든 말만 해 다 있어’ 하는 대형마트 느낌이라면 독립서점은 운영하는 사람의 가치관과 취향이 한껏 반영된 편집숍 느낌입니다. 그 말은 즉, 취향이 통했다면 사고 싶고 읽고 싶은 책도 많을 것이라는 말! 서점에 갔을 때 제일 위험한 게 뭔 줄 아세요? ‘무취향’입니다. 저는 특별히 ‘더’ 선호하거나 ‘확실히’ 싫어하는 분야가 딱히 없어서 대부분의 서점의 큐레이션

에 반하곤 합니다. 네, 맞습니다. 제가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에요.



사실 저는 책값이 ‘아주 아주’ 비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조금 저렴해도 좋겠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가격이라고 생각해요. 책에는 한 사람의 세계가 담긴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쓰면서 ‘이건 아까워, 이건 안 쓸 거야’ 하는 생각을 가진 저자가 과연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생각과 지식을 읽는 사람에게 더 잘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진심 어린 고민과 진실된 노력들이 모이고 모여 한 권의 책이 됩니다. 읽는 사람을 헤치려는 의도를 가진 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 난 후 독자의 삶이 더 나아지길, 나아가길 바라는 게 작가의 마음 아닐까요? 한 사람이 노력하여 얻은 결과물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대가치곤 싸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분실만 하지 않는다면야 ‘무기한+무한정’이잖아요. (라고, 상위 1%의 소비를 다시 한 번 합리화해 봅니다.) 그래서인지 ‘독서가 돈 안 드는 취미다’라는 말에는 결단코 동의할 수 없지만, 살짝 바꿔서 ‘독서는 돈 덜 드는 취미다’라고 한다면 끄덕끄덕 납득이 되기도 합니다.


아, 글을 마치기 전에 밝혀야 할 진실 하나.

구매는 상위 1%지만 독서량이 상위 1%는 아니라는 사실.


다들 ‘바로’ 읽으려고 책 사시는 거 아니잖아요. 

언제인지 모를 ‘언젠가’를 위해 사는 거, 저만 그런 거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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