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들이 견뎌야 하는 몇 가지 시선이 있습니다. 대부분 책에 대한 몹쓸 오해로부터 온 것인데요. 제가 오늘 그 오해들을 하나하나 풀어보려고 합니다. 심호흡 한 번 하고, 휴우- 레츠고!
첫 번째, ‘오~ 책 읽어?’ 시선.
이때 이 ‘오~’의 어감이 중요한데 놀리는 것도 아니고 감탄하는 것도 아닌 것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데 그렇다고 기분이 안 좋다고 내색하기에는 좀 뭐한 그런 정도의 ‘오~’ 입니다.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 거에 ‘오~ OO해?'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왜 책에는 ‘오~’ 하는 거죠? 책을 안 읽게 생겨서 책을 읽는 게 의외라는 뜻인가요? 그럼 책을 읽게 생긴 건 뭐죠? 책을 읽는 다는 게 그렇게 거창한 일인가요? 혹시 독서는 고상하고 지적인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신지요.
네, 맞습니다. 한때는 그랬죠. 특정 지식인과 상위 특권 계층만이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릴 수 있던 시절도 있긴 있지요. 하지만 그건 금속활자 인쇄술 발명 이전 손으로 일일이 베껴서 책을 만들던 때, 혹은 전쟁 이후 먹고 살기 바빠서 책을 살 여유 같은 건 없던, 그러니까 책이 귀하고 귀하던 시절 일이고요. 우리는 21세기 사람이잖아요. 신간만 1년에 6만종이 쏟아져 나오는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 ‘오~ 책 읽어?’ 라니 가당치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에 널리고 널린 흔해 빠진 책을 읽지 않는 게 ‘오~’ 할 일 아닐까요? 어려서부터 주구장창 독서의 장점과 필요성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들어오고, 원한다면 필요한 책을 24시간 안에 손에 쥘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도 굳건한 의지로 안 읽는 사람들에게 되레 ‘오~ 책 안 읽어? 대단한데?’ 해야 옳지 않을까요?
두 번째, ‘똑똑한 척한다는’ 시선.
이건 전부 드라마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캐릭터 중 진중하고 현명한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들의 취미는 왜 하나같이 독서인 걸까요? 극중 까불까불 왈가닥 캐릭터나 쉴 새 없이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수다쟁이 캐릭터들은 책을 읽으면 안 되는 건가요? 이런 캐릭터들이 책을 읽는 경우는 ‘반전 매력’을 드러내고자 할 때입니다. 마치 학창시절 내내 안경을 쓰고 있어 미모가 가려졌던 주인공이 안경을 벗자 후광이 비치는 미인이었다는 반전처럼, 가볍고 껄렁껄렁한 줄만 알았더니 ‘이런 지적인 면이?’ 하는 설정이 필요할 때 책을 읽곤 하죠. 하지만 책이 그렇게 ‘지적인 물건’인가요? 모든 책이 다 <이기적인 유전자>나 <총균쇠>는 아닙니다만.
책은 그냥 재미있는 물건입니다. 똑똑한 척하고 싶어서, 있어 보이려고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어서 읽는 거예요.
셋째, ‘요즘 한가한가봐?’ 하는 시선.
다른 건 ‘그런가보다’ 웃어넘길 수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만큼은 이번 기회에 정색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기요, 시간이 남아돌아서 책 읽는 거 아니거든요?”
영상도 길면 이용자가 집중하기 어렵다고 10분 내외로 편집하고, 그보다도 짧은 숏폼이 뜨는 세상에 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세상 비효율적인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책만큼 빠르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매체도 없다는 게 억측 같지만 제 생각이에요. 영상을 통한 정보 습득은 들을 땐 다 알 것 같지만 다 듣고 나면 ‘뭐지?’ 싶을 때가 많아요. 게다가 말은 글만큼 정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내용도 많고, 기본적으로 읽는 속도보다 말하는 속도가 더 느리기 때문에 같은 시간 내에 말은 글만큼 많은 양을 전달할 수 없어요. 한 시간 내내 영상을 시청해도 내용으로 치면 책의 한 챕터 정도 되려나요? 1부에 1시간씩 방영하는 16부작 드라마도 책으로 옮겨놓으며 2권, 많아야 3권입니다. 글만큼 시간 효율적인 전달매체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럼, 책 말고 다른 글을 읽으면 되지 않냐. 인터넷 검색하면 정보가 쏟아지는데 굳이 길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이 또한 책이 경제적이기 때문이에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나오는 텍스트 자료는 방대합니다. 그래서 문제예요. 그중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부터가 문제이고, 어찌어찌 선별을 했다 쳐도 그 무엇이 신뢰할만한 내용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걸 따져보는 데도 시간이 걸리죠.
책은 전문가에 의해 쓰여 출판사의 검증을 거쳐 나옵니다. 그만큼 신뢰할만한 알짜배기인거죠. 그러니 책을 읽는다는 건 시간이 남아돌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가장 아낄 수 있는 일이라는 거죠.
게다가, 저기요.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살고, 그 조각시간을 이용해 취미생활도 하고 자기계발도 하잖아요. 이 ‘조각 시간’에 하기 좋은 게 또 독서 아니겠습니까. 영상만 해도 이어폰 껴야 하고 휴대폰 꺼내서 앱 켜야 하고 보던 영상 찾아야 하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책은 그냥 쓱 꺼내서 읽으면 끝! 5분이던 10분이던 원하는 장소,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쌉 가능!
그러니 앞으로는 ‘시간이 남아돌아 읽는구나’ 말고 이런 시선을 보내주세요.
‘오~ 시간을 아끼려고 책 읽는구나!’
이런 시선이라면 대 환영입니다.
책을 읽는 일이 거창해지고 진지해지는 것에 반대합니다. 독서가 그냥 재미있고 유익한 일로 받아들여지면 좋겠어요. 책을 읽어 무엇을 얻는다가 아니라, 독서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되는 건가요? 책을 읽는다는 게 좀 더 가벼운 일이 되길, 책을 펴는 일이 스마트폰으로 SNS 앱을 여는 것만큼이나 부담 없는 일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읽는 사람들은 알잖아요. 알고 나면 이만큼 재밌는 일이 또 없다는 거.
아, 이거 참 좋은데 설명할 길이 없네. 일단 잡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