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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 Jun 03. 2016

엄마가 된다는 것

로톤 S. 파커, <첫 아이>

돌이 이제 막 지난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첫 아이죠. 


모든 엄마에게 첫 아이는 첫사랑과 같아요. 보는 것만으로 설레고 벅차죠. 지금까지 몰랐던 감정에 당황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툰 것투성이지만, 온 마음을 다합니다. 


로톤 S. 파커, <첫 아이( first born)>, 105*89cm, oil on linen, bank of America collection


로톤 S. 파커의 <첫 아이(first born)>이라는 그림이에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엄마와 강보에 잘 쌓여져 있는 아기. 꽁꽁 싸매고 있는 걸 보니 태어난 지 얼마 안되었나봐요. 눈도 크고 코도 오똑하니 참 예쁘게 생겼네요. 엄마와 아이가 시선을 맞추고 있지 않아서 어쩌면 누군가는 “엄마가 아이를 안고 딴 생각하네.”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다르죠. “아이가 어디가 아픈가, 얼굴이 발그레하네. 엄마가 걱정이 많아 보이네.” 

제가 그랬어요. 예전에 이 그림을 봤을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다시 보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전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어요.

지인의 아이를 만나도 그저 “귀엽다” 할 뿐 안아주거나 볼을 만져볼 엄두도 내지 않았죠. 바스라질 것만 같은 작은 존재가 조금 무서웠어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남의 이야기로만 알았습니다. 절대적인 희생과 관심을 요구하는 ‘육아’라는 것을 내가,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그러다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덜컥 겁이 났죠. 다행히 40주라는 시간이 제게 주어지더군요. 바로 엄마가 되는 것이라면 아마 저는 적응할 수 없었을 거예요. 처음엔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데도 ‘엄마가’로 시작되는 태담도, 심지어 태명도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을 정도로 쑥스럽고 어색했어요. 배가 불러오면 불러올 수로 뱃속의 아이와 친해지고 엄마라는 역할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아이와 한몸으로 지내는 40주 동안 서서히 엄마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꼬물꼬물 움직임이 느껴지고 내 몸의 크고 작은 변화들을 지켜보면서 ‘아, 나는 진짜 엄마가 되어가고 있구나’ 싶었어요. 인체의 말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체험했죠. 


아이가 태어나던 날을 기억해요. 많이 아팠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내가 그 고통을 견뎌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네요. 정말 그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이 안 된답니다. ‘정말정말 아프다’에 100제곱만큼 한다고 해도 모자라요. 하지만 그 고통은 금방 잊혔어요. 낳는 순간, 기적처럼 사라졌죠. 강한 진통제 탓인지, 호르몬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진짜로 아이를 만나는 순간 사라졌어요. 기쁘고 신기하기만 했어요. 저 작은 아이가 방금 전까지도 내 뱃속에 있었단 사실을 믿기 어려웠죠. 


남들 눈엔 그냥 ‘아기’였겠지만 저는 한눈에 사랑에 빠졌고,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이 아이를 평생, 정말로 평생동안 사랑할 수밖에 없겠구나.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것, 있구나. 그건 엄마의 사랑이구나.’ 

지난 1년 참 고된 순간도 많았습니다. 잠을 3시간 이상 연달아 자지 못한 채 몇 달을 보냈고, 영화관에 가는 것 참 좋아했는데 벌써 1년 넘게 가지 못하고 있네요. 아마 당분간 쭉 못가겠죠. 아이가 아플 땐 그저 내 탓 같아서 마음이 무너졌고, 아이가 먹지 않을 땐 어디 아픈 것은 아닌데 초록색 인터넷 검색창이 닳도록 검색을 해댔습니다. 그저 아이에게 집중한 일 년이었습니다. 지금은 나의 다른 어떤 이름보다 “엄마”라는 이름에 익숙해졌습니다.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그 호칭이 참 듣기 좋아요. 


알아요. 엄마로 살아갈 날은 이제 시작이겠죠. 아마 제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힘든 일이 기다릴지도 몰라요. 또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될 수도 있죠. 그게 무엇이든 온 마음으로 아이를 사랑하며, 아이와의 시간들을 감사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그림 속 아이의 엄마, 아마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일 겁니다. 저때가 가장 힘들더라고요. ‘충분히 자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수면부족에 시달리죠. 어쩌면 걱정이 있는 게 아니라 잠을 못자 멍한지도 모르겠어요. 그림 속 엄마에게, 그리고 만성 수면부족을 겪고 있는 모든 엄마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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