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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 Nov 02. 2024

이 재미있는 걸  어린이만 보게 할 순 없잖아


자, 고백하고 시작할게요.


저는 어린이책을 좋아합니다. 그림책도 좋아하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화를 특히 좋아하고, 지식정보책도 종종 읽곤 해요. 제가 평소 읽는 책의 절반 정도는 어린이책이에요. 어린이책을 자주 사고 자주 빌려 읽습니다.


하루 종일 책만 보라고 하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싶지만, 그 책이 어린이 책이라면 ‘오브 콜스, 와이낫’의 마음이 되어 신나게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어린이책은 쉽고 재밌거든요. 지루할 틈 없고, 머리 아플 일도 없습니다.

 

어린이책이 뭐가 그리 재미있느냐고요? 그렇게 물으신다면 저는 어린 장금이가 최고상궁에게 홍시 맛이 나는 고기를 먹고 했던 말 그대로를 따라하는 수밖에 뾰족한 답이 없습니다.

“그냥 재미있어서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이온데 어찌 재미있느냐라고 하시면...”



어린이책을 좋아하게 된 건 엄마가 되고 나서의 일입니다. 첫 아이가 돌이 되기 전부터 같이 도서관에 다녔어요. 아이와 놀아주는 게 서툴렀던 초보엄마가 가장 손쉽게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책 읽어주기'였거든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앉혀 놓고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봉사자분들이 운영하시는 독후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며 도서관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어요. 사실 도서관 간 김에 제 책을 좀 빌려오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하지만 바로 윗층에 있던 성인열람실은 한줌의 소음도 허락하지 않았고 언제 어떤 소리를 낼지 모르는 아이와 함께인 저에겐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대신, 유아 열람실과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어린이 열람실에 있는 어린이 동화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큰 기대 없이 빌렸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만 그랬을 뿐 두 번째부터는 기대와 설렘을 안고 대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책이라 좀 시시하고 유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아, 웬걸요! 어린이 독자를 위한 책이라 성인 단행본보다 글의 분량이 적고 쉬운 말로 쓰여 있긴 했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과 감동은 성인을 위한 책보다 결코 그 크기가 작다고 할 수 없었어요.


책 속 어린이들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불의 앞에서 잠시 망설일지언정 끝끝내 용기를 냈습니다. 비겁하게 못 본채하지 않았어요.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당연하다는 듯 먼저 손 내밀 줄 알았고, 친구의 고민에 머리를 맞대고 진심으로 고심했습니다. 친구를 위해 울 줄 알고,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친구를 응원할 줄 알고, 친구의 기쁨에 같이 함박웃음을 지어주었습니다. 위로를 위로답게, 감사를 감사답게, 사과를 사과답게 하는 책 속 어린이들을 만나며 어른인 저는 가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그렇게 시작한 어린이 책을 진짜 본격적으로 읽은 건, 첫째가 읽기독립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이왕이면 좋은 책을 골라주고 싶은 엄마 욕심에 전보다 더 부지런히 어린이책을 읽었어요. 어린이문학을 너머, 비문학 도서도 많이 찾아 읽었습니다. 아이를 위해라고 생각했지만 읽을수록 신나하고 빠른 속도로 빠져든 건 오히려 저였죠.


어린이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래도 간혹 있는 거 같은데, 비문학 어린이책을 읽는 분들은 많지 않은 거 같아요. 그런데 이 지식정보책이 어른들에게도 아주 유용합니다.  ‘와, 요즘 애들은 이렇게 배운다고? 부럽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다양하고 재미있는 지식정보책이 존재합니다. 하나같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되어 있어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데, 그런 와중에 지식과 정보들이 내용 안에 쏙쏙 박혀 있어서 자연스럽게 익히고 배울 수 있어요. 사진 자료와 그림 자료는 어쩜 이렇게 풍성한지 ‘나 때는 왜 이런 책이 없었나’ 하고 탄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늦지 않았어요. 무언가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 새롭게 알아가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그 시작은 ‘어린이책’으로 하시면 틀림없습니다. 어려워보이는 과학이나 역사 같은 분야도 어린이책으로 시작한다면 기분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어요. 그 어떤 기초이론서보다 쉽게 쓰여 있고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초보자를 위한’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이란 수식어가 붙었다고 해도 성인 책은 다소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배경지식이 없다면 막히고 답답한 부분이 생겨 중간에 포기하게 될 가능성도 높죠.


하지만 어린이책은 달라요. '정말 하나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쓰인 책들이 있어요. ‘이것도 몰라?’ 하고 속 터져 하지 않고 차근차근 알려줍니다. ‘이쯤은 알겠지?’ 속단하지 않고 친절하게 쉬운 언어로 손을 꼭 잡고 끌어줍니다. 저는 한국사와 세계사를 어린이책으로 공부했어요. 그림이 절반을 차지하는 저학년 대상 책으로 시작해, 글밥이 조금 많아지는 고학년 책, 청소년책, 성인책으로 그 단계를 조금씩 높여가며 책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꼭 알아야 할 핵심 중의 핵심은 ‘어린이책’에서 다 배웠구나‘ 라는 걸. ‘에이, 나이가 몇 살인데 어린이책을’ 하고 쉽게 판단하지 마세요.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을 만큼 쉬운 언어로 쓰인 책일뿐 어린이‘만’을 위한 책은 결코 아니에요. 읽으면 읽을수록 더 느낍니다.


어린이책에서는 동물들도 자주 말을 하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경우도 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동도 예사로 해요. 이런 어린이 책에서만 일어날 법한 신비로운 일들은 팍팍한 어른의 삶에 웃음과 용기를 주곤 합니다. 어린이이던 시절 나도 자주 상상했지만 언제부턴가 잊고 지냈던 한계와 불가능이 없는 마법의 세계를 책을 통해 마주하고 나만의 판타지를 오랜만에 꿈꿔보기도 합니다.


물론 요즘은 ‘어른을 위한 동화’들이 따로 나오지만 저는 굳이 그렇게 구분을 두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분류하는 순간 그 외의 동화들은 전부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되버리는 것만 같아서요.  이 재미있는 책을, 이렇게 알찬 책을 대체 왜 어린이만 봐야하나요? 



저희 집 10살 어린이는 도서관에서 재미있는 어린이책을 빌리면 꼭 저에게 묻습니다.

“엄마도 이 책 읽을래?”

저도 열렬한 어린이책의 팬이라는 걸 딸이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딸이 재미있다고 골라온 책은 여지없이 최고입니다. 엄지척 하게 됩니다. 제가 딸에게 추천한 책은 간혹 딸이 별로 안 좋아할 때도 있는데 딸은 실패가 없어요. 번번히 딸이 골라준 책에 반하곤 합니다.


역시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가장 잘 고르는 걸까요? 

아니면 제 정신연령이......

아, 아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무튼 어른 독자 여러분, 이 재미있고 알찬 어린이책을 어린이만 보는 건 좀 샘나지 않나요? 어린이에게 그만 양보하고 같이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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