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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Jul 15. 2022

아줌마들은 왜 아이돌 덕질에 빠진 걸까?

주책바가지라고 놀림받는 이들을 위한 변명과 위로

오 년도 넘은 일인 것 같다. 휴가 차 한국 가는 비행기에서 남편은 한국에서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이라며 뮤직 비디오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저리 치우라고 내가 지금 아이돌 좋아할 나이냐며 핀잔을 줬다. 하지만 슬쩍 본 뮤직비디오에서 그들은 놀라운 칼 군무, 카리스마, 매력 등을 선보여 아이돌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이 생겼다.


아이돌 그룹에 대한 대중의 편견은 대략 이러하다. 아이돌은 기획사에서 어릴 적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트레이닝을 받는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 춤추고 노래하는 기획사의 상품이다. 그들의 팬덤은 초중고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 팬들은 유사 연애하는 기분으로 아이돌 그룹에 열광한다. 아이돌은 이 팬덤 내에서만 유명한 그들만의 리그를 이루고 있어 일반 대중 즉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이돌 덕질은 철 모르는 아이들이 어릴 때 잠깐 하고 지나간다는 인식이 강하다. 따라서 성인이 아이돌 덕질을 하면 주변에 엄청나게 따가운 시선과 주책바가지라는 질타를 받게 된다. 그런데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보면 중년의 아줌마들 심지어 할머니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들이 사춘기 소녀들처럼 유사연애의 감정으로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대체 중년의 아줌마들은 왜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게 된 것일까?




아이돌 그룹의 본업은 춤추고 노래하는 일이다. 그들은 무대를 통해 자신들의 엄청난 끼와 에너지, 열정을 발산한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열기를 같이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한다. 보통의 중년 아줌마들은 몸 하나하나가 고장 나는 시기를 맞게 된다. 요즘 하도 백세시대라고 떠들고 운동하면 청년과 같은 몸으로 살 것처럼 말하지만 현실의 중년들은 생체시계에 따라 충실히 기력이 떨어져 가고 있고 갱년기는 이 노화를 가속화한다. 아무리 마음은 안 늙었다고 부정해도 몸이 안 따라주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보면 그들로부터 에너지와 젊음의 기운을 충전받는 느낌이다. 나이 들어 대학 캠퍼스에 놀러 가면 그 특유의 캠퍼스 분위기를 느낀다고 하는데 그것은 파릇파릇한 청년들의 꿈과 희망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일 것이다.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즐기는 것은 캠퍼스 분위기를 통해 잠시나마 젊은이의 패기와 열정을 느끼는 원리와 비슷할 것이다.


아이돌 그룹은 그들의 본업만큼 팬들과의 소통에 신경을 쓴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들은 SNS를 활용해 팬들과의 소통을 마케팅 전략으로 강조한다. 90년대와 2000년 초반에는 음악방송, 대면 콘서트, 팬사인회로 아이돌 가수와 팬의 만남이 국한되었다. 이러한 드문 접촉으로 팬들은 자신의 일상에서 그들의 가수를 일방적으로 짝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유튜브, V앱 등 각종 플랫폼을 활용해 가수와 팬이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소통이 가능해졌다. 당연히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소통하러 오면 팬들의 사랑에 감사해하고 다정하게 대해준다. 중년의 나이에는 주위에 나에게 이토록 다정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드문 것과 대조적으로 말이다. 직장에서는 내 잘못 하나하나에 물어뜯을 듯 달려드는 하이에나들로 둘러싸인 것 같다. 집에서는 어떤가? 가족 구성원들 각자 자기 삶에서 오는 분노와 스트레스가 꽉 차있어 조금만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소통하러 오는 아이돌은 현실 세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달리 무척 다정하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이것이 현실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팬들도 안다.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말랑해지는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팬들은 현재 아이돌 그룹의 모습 그대로를 즐기기도 하지만 그들에게서 내 삶을 투영해 즐기기도 한다. 아이돌은 보통 어린 나이에 데뷔하고 팬들은 그들의 성장을 함께한다. 마흔을 넘어 중년을 맞이하면 살아가는 이치를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뜻대로 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등바등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어느새 나의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의무로 가득 차 있다. 세월이 할퀴고 간 얼굴과 삶에 찌든 피로한 눈빛은 중년의 트로피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 저 무대에 서있는 아이돌 그룹처럼 저렇게 초롱초롱 희망으로 마구 빛났던 때가 있었다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비록 이루지 못한 것들이 있지만 내가 응원하는 아이돌 그룹은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나를 투영한다. 이렇게 그들의 성취를 공유하면 내가 비록 그들은 아니지만 그들의 성취에 조금이나마 내가 있음을 느끼며 뿌듯하다.  




예전에 배우 하정우가 인터뷰에서 자신의 전시회에 대한 소식을 전하며 했던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고 하듯이 누구나 자신만의 한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한강은 그림 그리는 일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아이돌 덕질이라는 한강을 만드는 것이 왜 손가락질받을 일인지 모르겠다. 덕질은 내 삶의 질을 높이고 정신건강을 돌보는 가성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물론 아이돌 덕질에 심하게 매몰되면 수백수천 깨지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앨범 사고 음원 스트레밍 하고 그들이 제공하는 자체 콘텐츠 영상을 즐기고 가끔 질 좋은 굳즈를 사는 정도로 내 행복을 누린다면 매우 괜찮은 일 아닌가?


중년이 되면 두근두근 가슴 뛸 일도 적어져 인생의 재미가 준다. 자신의 능력은 갈수록 제한되고 죽을 날은 점점 가까워져 충동적으로 될 대로 돼라 식의  쾌락적인 일을 저지르는 중년의 위기도 겪을 수 있다. 물론 이 시기의 위기를 새로운 배움과 도전을 통한 자아성찰과 자아실현으로 극복하는 훌륭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 버텨내기도 버거운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 쉽지만은 않다. 그리고 꼭 거창한 것만이 아니라 소소한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위기를 잘 극복해낼 수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덕질로 중년의 위기를 유유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예를 아이돌 덕질로 들었을 뿐이지 스포츠 팀을 좋아해도 되고 배우를 덕질해 그의 작품을 같이 즐겨도 된다.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내일을 기다려지게 하는 그 무언가를 찾는 것 중요하다. 덕질 만세!


아! 마지막으로 몇 년 전 남편이 권했던 뮤직비디오는 BTS의 피땀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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