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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Jul 27. 2022

꿈은 크지만 현실은 시궁창인 사람들을 위한 위로

[배부른 나라의 우울한 사람들]을 읽고 든 단상

많은 대학들이 자교 학생들을 위해 학생상담센터에서 무료로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 많은 내담자들이 토로하는 주제 중 하나는 단연코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스카이, 서울대 또는 의대 갈 수 있었다.’ 일 것이다. 자신이 목표했던 대학에 온 학생들조차도 의대, 약대, 치대, 한의대를 가기 위해 다시 시험을 봐야 하나 아니면 로스쿨에 가야 하나 먹고 살길을 끊임없이 걱정한다


그렇다면 먹고 살길의 초입 정도는 해결한 사회초년생들의 사정은 나아졌을까? 그들은 여전히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토로하며 이직 또는 전문직 준비에 열을 올린다. 목표했던 좋은 곳에 입사한 사람들조차 만족스럽지 못하다. 겉보기에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기껏 맡은 업무는 잡무에 불과한 것 같아 내가 생각했던 일이 아니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또는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월급쟁이의 사정은 뻔하기도 하고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다시 의약치한 전문직을 준비해야 하나 다음 스텝에 끊임없이 불안을 느끼고 만족을 모른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은 이러한 현상을 우리보다 더 일찍 겪었다. [배부른 나라의 우울한 사람들]의 저자인 정신과 의사 가타다 다미미는 그 원인을 일본 사회 안에서 찾았다. 1960년대 말 일본의 슬로건은 해방이었다. 즉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한다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의 환상이 사회 전반에 팽배했다. 그 이전에는 개인에게 부여된 경직된 사회규범을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사회가 하라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생각할 필요가 없어 편한 점도 있지만 개인의 자유가 점점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에 사람들의 불만은 점점 커졌다. 결국 이러한 규범이 타파되어 자아실현의 사회가 오고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대로 살 수 있다는  환상에 부풀었다. 하지만 그 환상이 너무 커서인지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는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막상 자신의 뜻대로 살려고 했지만 그 뜻을 쫓아갈 자아는 텅 비어 있어 기대와 다른 차가운 현실에 마주하게 된것이다. 이들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분노를 외부로 돌렸다. 나는 충분히 잘났지만 이렇게 된 것은 집에서 더 지원을 안 해줘서, 인맥이 없어서, 운이 나빠서, 기회가 없어서, 세상이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 등등의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우리나라도 똑같진 않지만 비슷한 사회현상을 겪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에는 일자리가 비교적 많았다. 우리의 부모는 비록 가난했지만 노력하는 만큼 경제성장의 과실을 따갈 수 있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이룬 부를 바탕으로 자식 교육에 매진했고 너희들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를 주문처럼 사회의 신념처럼 자식들에게 주입했다. 그렇지만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자식 세대의 전체적인 학력 등 실력 수준은 올라갔지만 경제성장은 침체기에 이르러 양질의 일자리는 줄었다.


노력하면 다 된다라고 사회는 외쳤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재능도 노력도 보통인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꿈꾸는 삶은 평범을 넘어선다. 이상은 무지하게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 괴롭다. 이럴 때 해결책은 두 가지밖에 없다. 노력을 해서 이상에 가까워지거나 이상을 낮추는 것이다.


물론 첫 번째 방법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누구나 노력하는 만큼 다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회는 상대적인 것이라 남들이 나보다 더 재능이 있거나 내 노력을 넘어서면 나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실하고 선량한 사람들은 남 탓도 못하고 죽어라 노력할 것이다. 그저 자신을 채찍질한다. 노력하는 나(공부하는 나)에 중독되는 것이다. 물론 임상적으로 그런 진단은 없다. 왜냐하면 공부(노력)라는 행위 자체는 좋은 것이라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부하다가 죽은 사람도 의외로 많다. 어린 학생이 죽으면 쉬쉬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도 많고 쉬지 않고 공부하다 중병에 걸려 일찍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 뼈를 갈아서 노력하다 진짜 뼈가 갈리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사례들을 지켜본 나로서는 첫 번째 방법이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라 말하기 매우 조심스럽다.  


그럼 이상을 낮추는 것은 어떨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SNS, 인터넷 등으로 다양한 사람의 정보가 공유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진짜로 어쩜 그렇게 이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본 투 비 부자인 재벌 회장을 롤모델로 삼지 않는다. 이들이 롤모델로 삼는 사람은 노력해서 꿈을 이룬 평범한 이들이다. 이들을 따라 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롤모델과 비교해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그러면 사회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쉽게 말한다. 나는 이 말이 너무 웃기다. 적어도 한국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고 내가 모자란 점을 보완해 뛰어넘으라고 철저히 교육받은 비교의 신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비교는 불행의 근원이라니 말 바꾸기 참 재미있다. 또한 비교를 안 하면 내가 도태되는 세상이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내 자리를 차지한다. 내가 열심히 성실히 돈을 차곡차곡 모아도 다른 사람들의 부와 화폐가치에 따라 내가 한순간에 벼락 거지가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무엇보다도 경쟁과 질투는 인간의 DNA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본성이기에 무턱대고 비교하지 말라는 것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가타다 다미미는 꿈은 큰데 현실은 시궁창이라 괴로운 사람들을 위해 과도한 자기애를 돌아보라고 처방내린다. 인간은 유아기에 세상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자기애를 발달시킨다. 이러한 유아기의 자기애가 세상에 나와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해서 과도한 자기애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자녀 세대는 자식이 하나 둘인 세상이다. 고생한 부모 세대들은 자녀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줘 자녀들이 과도한 자기애를 키우는데 일조했다는 한다. 이런 상태로 성장한 자녀세대들은 롤모델에게서 이상적인 나를 발견한다. 성인이 돼서도 여전히 바람이 든 자기애가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과도한 자기애가 문제였고 더이상 성장하는 시대가 끝났음을 받아들이면 남 탓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물론 아무리 일본과 우리나라 사회가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해도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체념의 문화가 조금 더 강하다. 따라서 가타다 다다미의 처방이 우리나라 사회와 꼭 맞는 처방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준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노력하면 다 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해내지 못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나도 열심히만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멈추기가 어렵다. ‘넌 능력에 비해 과도한 이상과 자기애가 문제니 헛바람을 빼라’ 고 조언하는 것도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풀릴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와신상담해서 결국 꿈을 이루는 감동사례가 많이 보도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드물고 희귀한 일이기 때문에 보도되고 사람들에게 이슈가 된 것이다. 나의 이상으로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숭고한 행위가 내 건강과 삶을 심각하게 망치고 있거나 내 가족과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면 결단력 있게 멈추는 것도 뼈를 깎는 노력만큼 대단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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