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내가 죽음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가 선물해준 책이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님이 쓰신 수필이다. 그런데 정작 죽음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의사와 환자의 시각차이, 그 거리감이 눈에 더 들어왔다. 의사인 본인이 특별한 사명감으로 의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의사도 휴식이 필요하고, 의사는 마냥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할 수 없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교수님의 용기가 대단했다.
아니, 사실 용기가 대단하다는 말은 에둘러서 한 말이고, 내가 진짜 한 생각은 '이게 해도 되는 말인가'였다. 나 또한 인턴 레지던트를 하며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지만 교수님은 몇 십년 임상을 하시면서 나보다 훨씬 깊은 고민을 하셨을 것이다. 개인의 삶과 의사로서의 삶의 경계에 대해. 그런데 그 고민의 결과로 내놓은 말이 '의사도 별 것 없는 사람이다'라는 것에 '그것이 최선인가요'라고 묻고 싶었다. 그리고 '의사도 사람이다'의 뜻은 '그러니 환자는 의사를 그만 괴롭히고 이해하라'는 뜻인 것만 같았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불편한 진실을 굳이 입밖으로 꺼낼 때는 그 말이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은 아닌지 고민 해야한다. 너를 위해 별이라도 따다줄게라는 말은 실현불가능하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그 정성과 노력에 기분이 좋은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모든 자식을 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분명 아픈 손가락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굳이 아이의 물음에 '응 난 너의 형이 더 좋단다. 엄마도 사람이거든'이라고 하진 않는다.
환자들이 의사도 사람임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병원에서는 환자와 의사가 사람 대 사람으로서 동등하게 만나지 못한다. 이 책에도 나온 것처럼 의사에게 환자는 one of them이지만 환자에게 의사는 하나뿐이다.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부모와 갓난아이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기가 엄마의 개인사정을 봐가면서 울지 않는다. 의사라는 엄마 입장에서 환자라는 아기는 심지어 여러명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울기도 하고, 한 아이를 돌보느라 다른 아이를 신경 못 쓰기도 하니 늘 미안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불만이 생긴다. 이 아기가 다른 아기의 사정을 이해하길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이다. 그럼에도 엄마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힘들고 다른 일이 밀려있어도 아이에게 눈길 한번 손길 한번 더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이 때문에 힘들지만, 또 아이 때문에 웃는다.
내가 임상 경력이 4년 밖에 되지 않아서 열정이 넘치는 걸까. 무엇이 되었든 미래의 내가 의사를 계속 할 것이라면 '난 별다른 사명감도 없고 환자는 절대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진 않았으면 한다. 설령 그런 마음이 들었을지라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내가 되길. 환자도 의사도 진짜 가족처럼 대할 순 없단 걸 알지만 환자가 원하는 것은 가족처럼 대하고자 하는 내 정성과 노력임을 잊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