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뚜르, 내생애 마지막 49일'
윤혁씨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건강한 일반인도 하기 힘든 뚜르 드 프랑스 코스에 도전했다. 뚜르 드 프랑스 첫 고비라는 피레네 산맥 업힐. 선수들도 중도포기 한다는 이 곳을 윤혁씨는 하루만에 완주했고 그는 힘들지만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군가를 핏대 올려가며 부르짖으며 알프스 업힐을 하는 그의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씩씩함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결국 씩씩하던 그도 어느 야간 라이딩에서 부모님이 보고싶다고, 부모님 돌아가시는 것까지 돌봐드리고 싶다면서 엉엉 울었다. 그 모습에 가슴 아프면서도 오히려 안심이 됐던 건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도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업힐을 오르는 그와 파트너들의 눈을 보았다. 땀이 송글송글 맺힌 눈빛에서 이기고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암에 걸린 '덕분에' 종주도 하고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하는 그의 말에서 삶에 불평만 하던 내가 부끄러웠다. 눈에 담는 풍경 하나, 냄새 하나가 다음은 없을 것이라는 전제를 두니 그가 웃고 있어도 그걸 보는 나는 웃음이 나지 않았다. 완주 후 흘린 그의 눈물에는 고마움, 기쁨만 있는 게 아니라 삶에서 이룰 것을 다 이루었다, 이제 정말 죽음이 남아있구나 하는 두려움도 들었을 것 같다.
그렇게 건강해 보이던 그가 불과 몇달 후에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영상에 나타나 충격적이었다. 프랑스에서 만난 관장님이 방문했을 때 살아야하는데 죄송하다고 울던 그. 다큐 완성작을 그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보았다. 아마 마지막일 그 장면을 눈에 다 담아가려는 듯이. 영상에서 해맑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은 이 세상에 그가 없다는 사실에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줄 알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먹먹했다.
그를 보면서 행복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2주 만에 PPT 수천장을 소화해내는 의대시험공부를 하다 보면 우스갯소리로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 하는데 그렇게 있는 것이 행복한 상태일까. 아무 걱정도 아무 긴장도 없는 상태가 행복한 상태일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 특정 상태를 행복이라고 규정하고 그 외의 상태는 행복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 행복의 정의는 조금은 달라졌다. 시험만 없어지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도 착각이지 않을까. 오히려 시험이라는 어려움이 있기에 그 사이에 느끼는 막간의 휴식이 달콤한 것 아닐까. 이를 인간의 존엄성에 적용해볼 수도 있다. 수명, 둔, 시간, 체력이 유한하기 때문에 이러한 불완전함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피나는 노력이 가치 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은 ‘불완전함’에서 나온다. 마찬가지로 윤혁씨의 도전이 가치 있는 이유는 바로 삶이 유한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