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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Gwon Apr 26. 2019

몸을 빚다

나의 강점

"닭가슴살 안 질려?"

그러게. 매일 똑같은 도시락을 싸와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오히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질린다했다. 바나나, 군고구마, 삶은계란, 닭가슴살, 샐러드, 운동. 90일동안 그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계획한 대로 식사하고 운동하면 된다. 피치 못하게 외식을 하면 그만큼 더 운동하면 된다. 단순했다. 그 외의 다른 원칙은 필요 없었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면 유체이탈해서 '그런 생각이 드나보다' 남의 일 보듯 하고는 뚜벅뚜벅 헬스장에 갔다. 그저 계획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 결과 내 벽을 넘어선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내 벽 너머의 세상으로 가기 위한 마법의 주문, "하나만 더"

헬스장에 가서는 오로지 나만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호흡과 근육 하나하나의 느낌에 집중해서 천천히 하나, 둘, 셋, 넷.. 그러다보면 근육이 덜덜 떨리는 시점이 온다. 그 짧은 순간에 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왜 돈 주고 기합받나, 얼굴에 주름지겠다, 한 번쯤이야, 오늘은 일이 힘들었으니까 운동 살살하고 내일 열심히 하자. 이런 생각에 호로록 넘어가서 그냥 힘을 풀어버리면 근력운동의 효과가 떨어진다. 근육이 아우성치는 그 때가 바로 내 벽을 넘어설 수 있는 시점이다.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눈 딱 감고 마법의 주문을 왼다. "하나만 더"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쌓아갔다. 내 손으로 나를 빚는 느낌이었다. 최상급의 나를 향해.

운동으로 인생을 배우다, 쉼의 미학 

초반에는 당연히 운동을 매일, 많이 할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근육이 더 줄어들었다. 시무룩해하는 내게 트레이너 선생님이 운동을 혹시 매일 하고 있느냐고 물어봤다. 알고보니 무조건 많이 한다고 좋은 게 아니라 운동 후에는 꼭 쉬면서 회복하는 시간을 둬야 근육이 붙는다했다. 운동을 하는 도중에는 오히려 근육이 분해된다. 그 후에 쉬는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근육이 재생되면서 크기도 커지고 근력도 세진다. 몸이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단 게 신기했다. 내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쉼표가 꼭 필요했는데 여태 난 쉼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공부도 엉덩이힘으로 했고, 일도 인내력으로 했다. 그래서인지 근육이 붙으려면 쉬어야 된다고 하니 쉬긴 하는데 처음엔 마음이 조급했다. 그런데 쉰 만큼 다음날 운동하면 되지 하고 생각을 고쳐먹으니 마음도 편해지고 실제로 근육량도 더 늘었다. 그렇게 운동과 쉼을 적절히 섞었더니 일과 운동을 병행하기도 수월해졌고, 생각보다 편하게 운동할 수 있었다.

운동으로 인생을 배우다, 인생은 다양한 재미를 배우는 과정

능률이 오른 만큼 내 벽도 어느덧 하나둘씩 넘어섰다. 그리고 벽 너머엔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직장인이면서 머슬마니아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 가정주부이면서 홈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어 유투브 영상을 올리는 사람, 일반인인데 바디프로필을 찍는 사람, 온라인 PT와 운동용품 사업을 하는 트레이너 등등. 닭가슴살이 이렇게 다양한지도, 운동도구가 이렇게 많은지도, 운동에 대한 수요가 이렇게 많은지도 몰랐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몸매가 예쁜 사람을 봐도 다른 세상 사람마냥 어 예쁘네 하는게 다였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직접 운동을 해보니 내 몸이 변하는 게 보이는 데다, 그 변화를 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알게됐다. 그래서 자기를 가꾸는 사람들이 새삼 대단해 보이고 그들도 운동 전에는 나와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았다. 그 중에서 제일 재밌어 보였던 것이 바디프로필이었다. 서른 기념으로 인생 몸매를 만들고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기도 해서 목표를 바디프로필로 잡았다. 생각보다 준비할 것이 많았다. 처음엔 막막했는데 온갖 연예인 화보도 보고, 다른 사람이 찍은 것도 보면서 분석해보니 포즈나 준비 방식에 비슷한 패턴이 있었다. 그래서 차근차근 어떤 사진작가가 나랑 잘 맞을지 고르고, 어떤 컨셉으로 촬영할지 상상해보고, 포즈 연습도 했다. 하얀 피부에 태닝도 했다. 바디프로필 촬영 자체도 참 재밌었다. 내가 공들여 빚어낸 몸이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시간이었다.

촬영 후 자주 들은 이야기가 '이거 너야?'였다. 베시시 웃으면 '왜 갑자기?'라고들 물었다. 사실 갑자기는 아니었다. 견고하게 나를 감싸고 있던 관성을 이겨낸 건 평소에 조금씩 쌓인 자극들이었다. 30년간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뱃살이나, 가랑비에 옷 젖듯 늘어가는 몸무게 따라 점점 찌뿌드드해지는 몸을 느껴왔다. 조금이라도 허리선이 들어간 옷을 입었다하면 하루종일 피곤했다. 후배들에게 씁쓸하게 웃으며 '병원 들어와서 찐 살 절대 안 빠져'라고 이야기하는 스스로에게 문득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묻기 시작했다. 내 가능성을 제한하는 건 스스로다. 그 대우명제는 스스로 제한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내 가능성을 제한할 수 없다이다. 물론 지금 내 모습은 현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만든 최상급이겠지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다음에는 또다른 내 모습을 만들 수 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하라는 말이 위로가 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내 의지와 힘이 있다면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하란 말은 발목을 잡는 말이 된다. 꼭 운동이 아니라도 그 무엇이 되었건, 여러분이 앞으로 스스로 발굴해낼 모습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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