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해낼 힘은 사랑에서 나오지
2021년 12월부터 남편이 서울 집에서 세종시에 있는 회사로 원거리 통근을 시작했다. 아침 7시 5분 수서역에서 SRT 열차를 타고 세종시로 출근한다. 그리고 저녁 7시 40분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약 7년간 했던 했던 출퇴근길을 남편이 역코스로 다니고 있는 셈이다.
7년 동안 살았던 세종을 떠나고 나니 좋아하는 산책코스, 주말에 시간 보내기 좋은 카페, 매콤한 마라탕 맛집, 친구와 접선하는 곳이 사라져 허전했다.
특히 대전에 사는 직장 동료 Soo와 둘이서 일했던 금요일이 없어졌다. 계룡산 수통골 한 바퀴 돌고 학하 다방에서 노트북을 여는 그 코스에 담긴 따뜻한 대화와 안정감, 소속감... 일상을 지탱하던 무게 추 하나가 없어진 기분이다.
지금 사는 곳 주변을 걸으며 희한하게 세종의 동네를 떠올리곤 한다. 여기는 고운동(녹지비율이 높고 한적해 산책하기 좋은 동네) 같다, 저기는 새롬동(상권이 발달해 맛집이 많은 동네)이네' 그러면서.
새로운 동네를 천천히 탐색하며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장소들을 발굴하고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지니 이런 귀여운 동네 친구도 생겼다. 산책로에서 우연히 발견한 길고양이다. 해 질 무렵 남편과 함께 걷다보면 쫄래쫄래 나와 반겨주었다. (현재 이 아이는 좋은 분을 만나 입양갔다!)
독자들에게 이 책이 어떤 메시지로 닿을지 궁금했다. 책 배송이 시작되었다는 문자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7322294
우리 셋을 잘 아는 지인이 메시지를 보냈다. 본인도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게 되어서 그런지 감정 이입하며 <거기까지 가서 그렇게까지> 책을 읽게 되었다고. 이주 가능성이 보여 살짝 놀란 마음을 감추며 괜찮을 거라고 말하자, 돌아온 답이 제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이 사람과 연이 닿아 연인이 된 것 자체가 기적 같고 충분히 감사함을 느끼고 그래요.
결혼을 준비할 때가 생각났다. 세종에서 서울로 장거리 출퇴근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이유 (유연 근무, 체력, 집값 등...) 하지만 본질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던 것 아닌가! 그때의 초심이 제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
맞아...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그리는 중에 사는 곳이 바뀔 수 있다는 게 두렵고 불안했지만 그걸 잠재웠던 용기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왔었지!
결혼 7년 차, 나이 마흔이 코앞인 남편이 왕복 4시간 출퇴근 길로 기꺼이 떠나는 마음을 생각해 봤다. '아내가 이제는 좀 편했으면 좋겠다' 같은 합리적인 이유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사랑’이라는 걸 빼고 그 결심을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서부터는 어딘가 촌스럽고 유치한 느낌이 드는 사랑이라는 단어이지만... 결국 사랑이 하게 하는 것 아닐까.
에세이집 <거기까지 가서 그렇게까지>의 첫 리뷰를 써주신 진아님은 출퇴근 셔틀에서 틈틈이 책을 읽고 '동료들 셋이 책을 썼다: 그리고 책을 읽고 시키지 않았는데 쓰는 독후감'이라는 제목으로 긴 글을 남겨주었다.
일이 정-말 많은 시즌인 걸 아는데, 잠든 브런치 계정을 깨우면서까지 쓴 글이라면서. 진아님의 다정한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우정이 이 글을 쓰게 했다.
출판사 진저티프로젝트의 서현선님도라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북토크에서 들려주셨다.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땐, 객관적으로 출판할 만한 퀄리티 있는 글은 아니었어요. (웃음) 그런데 이 3명이 작심하고 책을 만든다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출판을 결심했어요.
이래도 되나 싶은 어떤 결심, 그 결심에 붙이는 이유 중 가장 밑에 붙어 있어 인지하지 못했던 '사랑, 우정, 감사'라는 단어를 꺼내어 보니 그게 나를 하게 만드는 근원적인 힘이구나 싶다.
올해도 '사랑이 하게 하는 일'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며 살 예정이다.
사랑과 우정으로 용기 내어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모험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