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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Nov 07. 2023

대기업 취업 말고 퇴사하기

이것도 아니면 난 어떡하지?

놀랍게도 입사 후에는 '이건 아닌데'의 연속이었다.


출근 2일 차에 선배라는 사람이 커피를 좋아하냐기에 커피를 못 마신다고 했다. 그랬더니 술을 좋아하냐기에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담배를 피우냐기에 안 핀다고 했다. 그랬더니 남자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아마 내가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확인하려던 질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암튼 참 기분 나쁜 질문이었다. 다행히 옆에 계시던 분이 '너 그런 거 물어보면 성희롱으로 신고당한다.'라고 해서, 그리고 난 2일 차 신입 직원이기 때문에 넘어갔다.


업무 시간은 굉장히 길었다. 점심시간 한 시간을 다 쓰는 것이 눈치가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대졸 공채로 입사해 본인보다 높은 직급으로 시작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와 이 일이 잘 맞았다면, 이 일을 사랑, 아니 좋아만 했더라도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사소한 것이다. 일이 많으면 많이 할 수도 있고, 시간이 없으면 점심을 간단하게 먹을 수도 있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선배들은 항상 '아니다 싶으면 빨리 나가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이외에도 많은 시간을 회사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물론 나도 공감하는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나도 저렇게 될까 봐 무서웠다. 여기서 n 년을 일하고 만날 수 있는 내 모습이 저 모습이라는 게 싫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처럼 싫으면 나가면 될 문제였다. 왜 그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회사를 미워하는 지박령이 되었을까.


너무 일찍 퇴사하면 안 된다는 말에, 퇴직금이라도 받고 나가라는 말에, 회사 밖은 회사보다 더 힘들다는 말에, 1년을 채우고, 2년을 채우면 좀 나을까 스스로 질문해 봤다. 대답은 "No"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업계는 힘들어질 것이고, 직무 순환으로 하는 일이 바뀐다고 해도 내가 하는 일에서 어떠한 보람도, 즐거움도 느끼지 못할 것을 나는 알았다.


퇴근길에 지하철을 기다리면서는 이어폰에서는 신나는 노래가 나오는데도 눈물이 났다. 그때 듣던 노래가 이무진의 '신호등'이었는데, '내가 빠른 지도 느린지도 모르겠어 그저 눈앞이 샛노랄 뿐이야'라는 가사가 꼭 내 마음 같았다. 취업 준비만 끝나면, 취업만 하면, 그게 대기업이면 힘든 것도, 울 일도 없을 줄 알았다. 천진난만한 생각이 날 더 좌절시켰는지도 모른다. 성격은 참 모나게 변했다. 퇴근을 하면 진이 빠져서 예민해지고, 그 예민함은 집에서도, 남자친구에게도 날카롭게 살아나기 일쑤였다.


많은 사람이 오고 싶어 하는 회사, 이것저것 따져봐도 나만 잘 버티면 중간 이상은 갈 텐데, 그래서 노력해서 가졌는데, 이것도 아니면 난 어떡하지? 여기도 싫으면 여기보다 못한 처우의 회사에 가면 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것도 못 버티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패배자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난 퇴사를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절대 도망가지는 않기로 했다. 무작정 도망 나오지는 않기로 했다는 의미이다. 100%의 패배감을 80%, 70%로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이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회사에서는 매일같이 우울하게 있으면서 날 학대하고, 그 우울함을 퇴근 후까지 가지고 와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또다시 일을 하면서 이력서를 적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퇴근 후에 그렇게 힘들었던 내가 퇴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참 열심히 지원을 했다. 물론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몇 번이고 노트에 지금 회사의 장단점을 적어봤다. 최종합격을 한 회사의 장단점과 비교하며 나름대로는 더 나은 결정을 하고자 애썼다. 결국 최종합격 한 모 외국계 기업 전환형 인턴에 가기로 결정했다. 전환형 인턴이라는 리스크가 있었지만 '무조건 전환되게 한다.'라고 결심했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모든 것은 빠르게 진행됐다. 취업은 그렇게 힘들었는데, 퇴사는 참 간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다음 공채에 간절한 누군가로 바로 채워졌을 것이다. 허무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큰 수확을 얻었다. 나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었고,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봉'만'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일을 선호한다는 것, 도망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좋은 사람, 똑똑한 사람도 참 많이 만났고,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주기도 했고, 또 부모님께 자랑할만한 자식이 되는 경험도 선물해 준 좋은 회사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사람은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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