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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Nov 06. 2023

그래서 대기업에 갔다

끝인 줄 알았지

스타트업 인턴 퇴사 통보를 하고 어느 날이었다.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잊고 있던 모 대기업 필기전형 발표를 확인했다. 이전에 같은 회사의 필기전형을 떨어진 전적이 있었던 터라 기대도 안 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합격


인턴을 하면서 퇴근하면 매일 공부를 했다. 또 한 번 탈락 화면을 보고 싶지 않아서 매일을 꾹 참고 책을 펼쳤다. 어느 날은 공부를 하다가 힘들어서 저녁에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남자친구의 "오늘 공부는 잘했어?"라는 말에 눈물이 난 적도 있다.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데 공부는 꾸역꾸역 해야 하는 상황이, 저번처럼 떨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모든 것들이 날 힘들게 했는데 저 질문을 들으니 내가 그날의 공부를 잘하지 못 한 모지리 같아서 눈물이 났다.


그런데 합격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일하면서 공부를 하지 않으려면 면접에서 꼭 붙어야겠다 생각했다.


사실 면접에서 긴장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면접 준비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결과는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쉽게 생각했고, 거만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퇴근 후에는 비대면으로 면접 스터디원들과 함께 모의 면접을 봤다. 혼자서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그 회사의 모든 면접 질문을 다 모아서 연습하고, 이동 중에도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며 면접 연습을 했다.


역시 면접 대기 장소에서 안내를 해주시는 분이 "별로 안 떨리시죠?"라고 하기에 "네"라고 대답했다. 정말 걱정만큼 긴장되지 않았다. 난 충분히 연습했고, 그걸 들어가서 하면 되니까. 그렇게 하루 만에 실무 면접과 임원 면접을 모두 보고 나왔다. 모든 면접이 그렇듯 '이렇게 대답할 걸' 후회되는 것도 분명히 있었지만 내가 준비한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발표일을 알려주지 않는 기업들 덕에 단계가 끝날 때마다 전전긍긍했다. 평소 1,000개가 넘게 쌓이는 시답잖은 메일도 신경 쓰지 않던 내가 메일 알림까지 켜놓고 알림이 울리면 잽싸게 확인했다. 해당 기업 면접자들의 단체 채팅방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내일 나올 것 같다, 하는 말 한마디에 다음날을 기다리고, 나보다 먼저 발표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보초를 서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여느 때처럼 내 방 침대에 누워있다가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면접 보기 전 보다 더 떨렸다. 차라리 면접 보기 전에 이렇게 떨렸더라면 내가 면접을 더 잘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한 번에 볼 자신이 없었다. 결과보기를 클릭하고는 바로 손으로 액정을 가렸다. 단체 채팅방에서 글씨 색깔로 합격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합격의 색이길 바라며 천천히 손을 뗐다.


축하합니다


최종합격이다. 단체 채팅방에서 사람들이 얘기했던 그 글씨색이다.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에서 수백 번은 보면서 부러워했던 그 합격창이었다. 다른 건 내 이름이 적혀있다는 것뿐이었다. 집에 같이 있던 엄마, 아빠에게도 바로 얘기했다. 누구보다 좋아하는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찔끔 눈물이 났다.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룹사 동기들이 모두 모여 회사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이 회사의 일원이 된 것이 기뻤고, 스스로 대견했다. 합격해서 기쁘고 감사한 건 나인데 회사에서 합격을 축하한다며 꽃과 선물도 보내줬다. 엄마는 그 꽃다발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런 게 대기업이구나.


드디어 했다. 이제 끝이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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