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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ug 30. 2023

어떤 인턴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내가 후회한 한 가지는 일을 한다는 안일함으로 취준을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다. 지원서도 몇 개 내지 않았고, 퇴근 후에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쉬기 바빴다. 이런 후회를 더 뼈저리게 하게 된 이유는 계약 만료로 백수가 되자마자 '코로나'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취업 시장은 더 얼어붙었고, 나는 또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와중에 또 한 번 6개월 인턴에 합격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인턴이라는 계약직 신분을 하루라도 먼저 벗어나기 위해 퇴근 후에는 자소서를 쓰고, 인적성 시험을 공부하고, 면접 준비를 했다.


사람들과는 즐겁게 지냈다. 이전 회사에서의 배움이었는지, 팀 사람들이 나와 맞았던 건지, 그 둘의 조화였는지 아무튼 인턴을 하는 동안 일은 스트레스였지만 사람들은 좋았다. 또, 이곳에서 난 제법 성숙한 직장인이 되었다. 로 혼이 나면 '미안하긴 한데 이게 그 정도 일인가?'라는 미성숙하고 반항적인 생각이 컸던 신입에서 그것들이 다 나를 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입사 후 중간중간 사수의 말에서 '혹시 퇴사하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 눈치는 왜 이리 쓸데없이도 빠른지 사수는 정말 곧 퇴사를 했다. 덕분에 난 몇 페이지나 되는 인수인계 파일을 넘겨받게 되었다.


'6개월 인턴 후 정규직 전환 가능'이라는 조건은 6개월 일하고 정규직이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안정한 상태였지만 업무 강도가 낮은 것은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업무는 많아졌다. 팀의 리더는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 중 일부에 대해서는 새로운 사람을 뽑아서 일을 넘겨주겠다고도 했다. 그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많아지는 업무에 나는 회사가 날 최저시급으로 부려먹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회사는 직원을 이용하고, 직원은 또 회사를 이용하는 거지만 정규직 전환을 빌미로, 최저시급으로 쓸 수 있을 때까지 쓰고 나서 전환을 시켜주겠다는 심보가 보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사람의 간절함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과도 문제가 없었고, 일에도 재미를 찾은 부분이 있어서 꽤나 오랫동안 갈팡질팡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인턴계약 만료 한 달을 앞두고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인사팀에서는 나에게 정규직 전환을 제안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 제안을 받고는 오히려 회사에 더 정이 떨어져 버렸다. 나의 퇴사가 확정된 후 내가 혼자 하던 일은 새로운 두 사람이 맡아서 하게 되었다.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고 얼마 안 된 금요일에 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직원과 저녁을 먹게 됐다. 그 직원은 나와 동갑이었는데 내로라하는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입사한 사람이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퇴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나는 사실 이미 회사에 퇴사 통보를 했고, 이달 말일까지 일을 하기로 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충격적인 메시지를 하나 보게 된다.


"메이야, 나 퇴사하기로 했어. **님(상사 이름)에게 메일 보냈어"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2시쯤 도착해 있었던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날 회사에 갔더니 그 사람은 몸이 안 좋아서 당장 월요일부터 출근할 수 없으며, 월급을 입금해 달라는 메일을 남긴 채 증발했다고 했다.


퇴사가 다 같은 퇴사가 아니라는 것, 퇴사라는 이별 과정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과연 어떤 퇴사자로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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