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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ug 10. 2023

어떤 계약직

무시 좀 당해도 안 죽는구나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돈은 필요했기 때문에 놀지만은 않았다. 아르바이트, 계약직, 인턴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근로 형태를 모두 경험했다.


졸업을 하자마자 마음이 급했던 나는 모 대기업 계열사의 마케팅팀에 '파견 계약직(6개월)'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를 하기 전에 '파견 계약직'을 과연 가야 하나에 대해서 인터넷 글을 많이 찾아봤다. 정규직 직원들과의 보이지 않는 차이/차별/자격지심 같은 이야기가 꽤 자주 보였다. 그렇지만 가면 괜찮을 거라고 혼자 행복회로도 돌려보고 했더랬다. 파견계약직이라고 쉽게 갈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력서, 자기소개서, 면접까지 다 보고 나름 합격 통보를 받은 거라 '집있는 것 보다야 얻을 것이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다니기로 결정했다.




대망의 입사 첫날, 내 자리와 노트북을 받았고 노트북을 세팅하다가 하루가 거의 다 갔다. 회사에 내 자리가 생기는 것도, 노트북을 받는 것도 처음이라 마냥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처음 가본 공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잔뜩 위축되었다.


회사라는 곳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삭막한 곳이라는 걸 첫날 깨달았다. 고요한 분위기에 미국 영화 속 보험회사처럼 파티션이 올라간 모습이었다. 게다가 내가 속한 팀은 유독 바쁜 팀이었기에 그 삭막함이 더욱 숨 막히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떤 분들은 친절하고 편하게 해주시려 했다. 다만, 어떤 분들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느낌이었다. 중간에서 난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몰랐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생활'은 처음이었던 나였기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일이 없을 땐 무엇을 하면 좋을지 조차 몰랐다.


나에게는 여러 가지 일이 주어졌는데 그중 메인은 매달 비용을 정산하는 일이었다. 단순 업무였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이마저도 적응이 필요했다. 하지도 못하는 엑셀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네이버 검색을 하며 일에는 조금씩 적응해 갔다.


업무는 배웠지만 회사 '생활'은 알려주는 이가 없으니 늘 물음표였다. 업무가 많았던 팀의 특성상 회사 사람들과 가까워질 기회가 많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싹싹하지도 않았고(그렇다고 지금 엄청 싹싹한 것도 아니다.) 회사에 가면 긴장해서 얼어있었다. 그런 와중에 회사 사람들과는 가깝게 지내지 않아도 사는 데에 지장이 없고, 일을 하는 데에도 지장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나보다는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던 옆 팀의 계약직 사원을 누군가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을 보고는 '역시 그냥 조용히 사는 게 중간은 가는 법이지'라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새 6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 하루하루는 참 시간이 느린데 일주일, 한 달은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계약만료를 한 1~2주 정도 남겨놨을 때쯤 다른 지점에 있던 직원이 내가 있는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났다. 사무실에는 자리가 없었고, 내 자리를 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난 마지막 2주 정도는 회의실에서 혼자 업무를 봤다. 처음엔 좀 서럽기도 했다. '회사에서 자르려고 복도에 벽만 보는 책상을 둔다는 게 이런 건가?' 결국엔 정말 편한 마지막 시간을 보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그날은 팀의 연말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메이님은 이따가 A님, B님 가실 때 같이 이동하시면 돼요~'라고 전달받았다. 알았다고 하고는 회의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나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는데 아무도 날 부르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그들끼리 가버렸고, 나는 혼자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과장님이 야근을 마치고 날 기억하셔서 같이 출발했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과장님은 '우리 팀 사람들 좀 그래~'라고 말씀하시며 머쓱해하셨다. 그래도 절 기억해 주신 분은 과장님뿐이랍니다,라고 속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당연히 회식 장소에서 날 본 그들은 깜빡했다거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을 겪으니 마지막 출근날이 전혀 아쉽지가 않았다.


미숙했던, 그리고 객식구로서의 나의 첫 회사 생활은 이렇게 끝이 났다. 내가 조금 더 일을 잘했더라면, 내가 조금 더 싹싹했더라면 내 회사 생활이 조금 더 즐거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시간이 지나니 그냥 그 회사, 그 팀, 그 사람들과 내가 맞지 않았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내가 계약직을 가기로 결심했을 때 생각했던 '집있는 것 보다야 겠지'는 맞는 생각이었다. 많진 않지만 꼬박꼬박 월급을 받았고, 서툴지만 엑셀도 조금은 할 줄 알게 되었다. 또, 회사에서는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감을 잡기도 했다. 물론 그래도 한참 모자랐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취준생에게 가장 중요한 '이력서의 한 줄'을 추가하게 되었다.


이력서에 한 줄 추가했으니 취업이 더 수월하겠지?라는 되지도 않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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