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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ug 09. 2023

소개팅, 세 번째에 고백이 국룰이라고요?

아니야, 하지 마.

정해진 건 아니지만 마치 그렇게 정해진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있다.

그걸 '국룰'이라고 하는데 소개팅과 관련한 국룰 중 하나가 '세 번째 데이트에 고백하는 것'이다.


추측컨대 세 번 정도 봤으면 일주일에 한 번 만났다 치고 3주 동안 연락하고, 약속을 잡아서 만났다면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것이 분명하니 이쯤이면 '오늘부터 1일'을 해도 된다는 것 같다. 제법 논리적인 이유이다.


나도 전 썸남(현 남자친구)과의 세 번째 만나러 갈 때 고백받을 예상을 하고 갔다. 한편으로는 '오늘 안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그날 우리는 석파정에 갔다. 더운 여름이라 싸간 얼음물을 마시며 '초딩 때 얼음물 손수건에 싸 온 애 있으면 한 입만 달라고 했었는데, ' 하면서 산책을 했다. 비싸 보이는 소나무 앞에서 얼쩡거리니 수위 아저씨 같은 분이 오셔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셨다. 기분 좋게, 그렇지만 누구보다 어색하게 나란히 서서 사진도 찍었다. 손을 잡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결국 잡지 않았다. 괜히 이 사람에게 '오늘이 고백의 날이야!'라는 쓸데없는 사인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 그 사진을 보면 정말 웃기다. 둘이 멀뚱히 서서 카메라만 보고 있다. 이제 와서는 둘 다 손이라도 잡고 찍을 걸~ 하고 얘기한다.


애인과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환상이나, 신혼여행에 대한 환상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은 몽골에 여행 가서 속옷만 입고 같이 말을 타고 싶다고 했다. 대학생 때 몽골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나. 그래도 그렇지 세 번째 만난 썸녀한테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참 희한한 사람이다, 싶었다. (그러더니 올해는 승마를 배운다고 한다.)


그렇게 저녁이 되어 밥 먹고, 갈 데도 없고, 집에 가기도 아쉬워 청계천에 앉아 있었다.

'아, 여기서 고백을 하겠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고백받기 전 그 공기는 유치원 아이들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청계천 안의 물고기도 그 공기를 느끼고 잠시 물 안에서 훔쳐 듣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고백을 했다...!

'나는 네가 정말 좋고, 이제 정식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난 거절했다.


난 세 번의 만남은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난 이 사람을 정말 좋아했고, 더 만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신중하고 싶었다. '세 번째에 고백이 국룰'이라는 압박감에 고백을 한 건 아닐까? 무엇보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더 생각해 보고, 이 관계를 정말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더 강한 확신을 갖고 싶었다. 섣불리 만났다가 섣불리 헤어지고 괜히 방구석에서 질질 짜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알았다고 했고, 우리는 더 만나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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