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를 처음 샀던 날을 기억한다.
가장 괜찮아 보인 건 어느 카페에서 앉았을 때 편안해 기억에 남았던 가죽의자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미 많은 곳에서 쓰이고 있는 흔한 모델이었다. 심지어 올리브 색깔이 마음에 들었지만 인기가 많은 컬러여서 결국 짙은 브라운 색깔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페에서 봤던 의자를 집에 들인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내 공간과 위화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물건이 나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들어온다니.
예전부터 책상이나 의자, 옷장 등 큰 가구들은 내가 구매할 수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저렴한 제품을 잘 찾아보면 옷을 살 때 지불하는 가격과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마음이 소비를 가로막았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어서 그런 생각이 더욱 커졌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촌스러운 벽지 무늬가, 서랍장 색깔이 눈에 거슬린다고 해도 그걸 바꾸는 건 내 소관이 아니라고 여겼다. 지금까지 식탁에 딸려왔던 웅장한 의자를 계속해서 쓰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큰 마음을 먹고 가족에게 아무 말 없이 의자를 한 번 사고 난 지금, 나는 큰 가구를 쇼핑하는 맛에 빠져버렸다. 요즘에는 자취생들을 위한 인테리어 쇼핑몰 앱도 잘 나와있다. 그런 곳에 들어가면 돈에 쪼달리는 내가 쿨하게 결제할 수 있는 물건도 많다. 그래도 사회인 5년 차인데 이 정도 할부야 뭐. 그렇게 나는 책상도 여러 번 바꾸고 현재 쓰고 있는 의자보다 더 내 취향을 저격하는 걸 사고 싶어서 계속 쇼핑몰만 보고 있다. 책상, 의자와 같은 소소하지만 거창한 소비가 용기의 첫걸음이 된 셈이다.
지금의 나는 퇴사를 했다.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큰 빚을 져야 한다. 그게 비록 머나먼 일이라고 해도 빚이 생긴다는 두려움은 변함이 없다. 난 언제나 거지였으니 미래에도 돈이 없을 거야...
그제야 부모님의 빚과 대출이 얼마나 큰 짐이고 또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지, 얼마나 어른 같은 삶이었는지 실감했다. 학자금 대출도 받아본 적이 없는 나. 이제는 단순히 5만원, 10만원 주고받는 나이가 아니다. 내 삶을 진척시키기 위해서는 오롯이 부담과 책임을 짊어지고 걸어가야 한다. 부디 책상과 의자를 사기로 결정했던 마침내의 순간이 다시 한번 설렘으로 찾아왔으면.
/2019.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