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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Jul 15. 2018

아메리카노가 만만하다는 착각

아이스 아메리카노, 합정 마담 티라미수

"여기 티라미수 맛있다던데, 식사 하셨어요? 하나 드실래요?"

"아... 네. 괜찮아요"


"네"는 식사를 했냐는 질문의 대답이었고, "괜찮아요"는 티라미수를 먹겠냐는 질문의 대답이다.

시간은 오후 2시경. 사실 나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일에 쫒겨 먹지 못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환하게 웃으며 티라미수를 정중히 거절했다.

관계자가 재차 나에게 디저트를 권했지만 내 입은 왜인지 자꾸 됐다고만 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사실. 나는 티라미수를 좋아한다. 디저트라면 환장한다. 심지어 여기는 카페 이름부터 '마담 티라미수'다.


이상하게 관계자와 점심 후 카페에 가거나 티타임을 가질 때 혹은 일정을 하는 동안에는 디저트를 먹지 않는다.

왠지 일로 엮인 사람과 함께 앉은 테이블에 디저트가 있으면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이상한 기류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게 디저트란 여유로운 시간에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내게 사소한 사치를 선사하고 싶을 때 먹는 일종의 의식 같은 존재다. 나만의 규칙 같은 거랄까.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시키는 음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만만하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주문을 할 때도 많다.

나는 메뉴를 고를 때 신중한 편이기 때문에(그냥 선택장애인 듯) 관계자와 멀뚱히 메뉴판 앞에 서서 "음..."하고 있는 게 곤욕이다.

빨리 메뉴를 고르라고 재촉을 하거나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도 없는데 쿨하게(?) "아,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요"라며 내 자리로 돌아가는 편이 마음이 한결 낫다.


그 중에서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잘 시키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쭉쭉 들이킬 수 있는 액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먹으면 오히려 더 갈증이 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런 사실보다 깔끔하게 목을 축여주는 음료가 나에게는 더 필요하다. 게다가 인터뷰를 할 때면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마가 뜰 때나 한 템포 쉬어갈 때 자연스럽게 여백을 두기 위해 의식적으로 컵을 들 때가 있어서 부담 없는 음료가 유용하다.


이날은 인터뷰가 있는 날이었고, 디저트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노래는 좋아했지만 별다른 기대 없이 임했던 인터뷰였는데 A씨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생각이 많아서 오히려 말을 잘 하지 못 하는 점이나,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시 여기는 점이나, 어느 하나에 빠지면 미친듯이 몰두하고 혼자만의 디테일을 따지는 점이나, 비슷한 게 많았다.

그렇게 한참 대화에 집중하다보니 시간은 어느덧 1시간이 훌쩍 넘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동 난지 오래였다.

그 상태로 계속해서 수다를 떨고 있으니 우리를 지켜보던 관계자가 음료를 또 주문해 슬그머니 내밀었다.

"이야기 많이 하시는데 음료가 계속 없는 것 같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선을 지키고 싶은 사람과의 거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선을 거두고 한 발 다가가게 된 관계를 드러내는 것같기도 하다.



/2018.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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