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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May 08. 2019

가벼운 삶을 산다는 것

일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나니


일을 떠나니 당연하게 여겼던 생활습관과 행동이 바뀌었다. 이 말은 곧 내 생활이 얼마나 일에 얽매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언제나 무거운 노트북을 짊어지고 콘센트가 있는 카페를 찾아다녀야 했다. 지하철 안, 지하철 승강장에서 노트북을 펼치는 건 예삿일이었다. 앉을 곳이 없을 때에는 자리에 서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때로는 엉덩이가 더러워지든 말든 바닥에 철퍼덕 앉아 아무렇지 않게 노트북을 꺼내기도 했다.


가방은 늘 많은 것들이 들어가는 에코백. 짐이 워낙 많다 보니 가방 무게도 최소화해야 내 허리가 버틸 수 있다.캘린더에는 각종 연예계 이슈와 스케줄이 정리되어 있었다. 어차피 내 약속을 잡을 시간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일정이 내 캘린더를 정복한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이제는 아니다. 노트북 대신 좋아하는 책과 노트를 들고 다녀도 된다. 카페에서는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최소한의 자리만 차지할 수 있다. 가방을 고를 때는 무조건 크고 가벼운 것만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 파우치와 지갑 정도만 들어가는 조그만 토트백도 살 수 있다.


캘린더에는 업무와 관련한 일정을 모두 삭제하거나 가리자 금세 텅텅 비어버린 흰 칸만이 남았다.물론 이 순간에는 좀 씁쓸하기도 했다. 모든 포커스가 일에만 맞춰져 있었기에 정작 내 생활은 없었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빈 가방을 들고 외출을 할 수 있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포털 사이트를 확인하거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가다 불현듯 놀라 인터넷 창을 들여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노이로제에 걸린 것마냥 메신저 알람에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글을 쓰고 싶을 때 쓰고 읽고 싶을 때 읽는 것.

이 사소한 것들로부터 오는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 행동의 자유를 갖는 게 이렇게 시원하고 달콤한 일이었다니. 어쩌면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나름 자유롭다고 여기고 있던  일이 어느새 온몸을 꽁꽁 싸맸던 걸지도 모른다. 이 가벼운 삶. 일과 내가 한 몸이 된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 재정의해봐야 할 듯하다.



/2019.4.1 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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