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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May 17. 2024

패션 디자이너, 고수들과 일해봤다.

내가 일하던 의류회사는 한국에서 꽤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의 부티크, G였다. 


원래 부티크는 '값비싼 이나 선물을 파는 가게'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는 부티크라 함은 대기업과는 달리 패션 디자이너가 직접 운영하는 의류회사이고, 소량의 의상을 제작하고, 좀 더 희소성을 추구하며, 고퀄러티의 상품을 제작하는 곳을 말한다. (많은 이들이 아는 앙드레김 의상 부티크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내가 G회사에 일한다하면, 꽤 유명한 회사였기에 다들 나를 부러워하곤 했다. 하지만, 사실 처음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러 갔을 때는, 실망이었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하여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전을 하였지만, 내가 일했던 2001년 당시에는 G 회사는 건물 지하에 공장과 디자인실이 함께 있었다. 가장 의아했던 것이 이 부분이었다. '왜 제품 생산 공장이 디자인실 바로 옆에 함께 있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디자인실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그 의문은 처음 일하기 시작한 날, 하루, 아니 반나절이 가기도 전에 사라졌다. 하루에도 몇 번을 그곳에 들락날락하며 깨달았다. 디자인실과 생산팀과의 소통의 과정이 여기선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구나. 생산공장이 거기 있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한 작업이었고, 속도면에서도 효율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잠깐 의상 제작과정을 설명하자면, 디자인실에서 그린 도식화를 생산팀에 넘기면, 패턴실에서 패턴을 만들어 원단을 자르고, 그것을 재봉하는 선생님들께 전달하여 - 임시로 입어보고 패턴을 수정하기 위한 옷 - 가봉옷을 만든다. 그리고, 다시 G 디자이너분과 최종 디자인 패턴을 정하고, 디테일도 정확하게 정하면서 옷이 만들어진다. 


이런 모든 과정이 그 작은 곳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있었다. 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곳에 계신 모든 분들은 모두 1인 기업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각자의 경력이 10년, 20년 이상의 전문가이셨고, 그보다 G 패션 디자이너 분과의 호흡이 오랫동안 이어온 결과일까. 정말 휘갈겨 그린 의상디자인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만들어내셨다. 길게 설명도 필요 없었다. 스케치를 생산팀에 넘기시면서 한마디만 하셨다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시죠" 


서로에게 믿음이 있으셨다.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믿고 맡긴다. 

그러면 원하던 그대로가 만들어져 온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디자인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일하고 계셨다. 






나는 요즘, 20년 전에 내가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 당시 깨닫지 못한 것을 글을 쓰며 여러 가지를 발견하고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러한 모든 점들은 나의 삶에, 내가 현재 일하는 방식에 꽤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한 깨닫고 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나는 고수들과 일했구나. 그때 함께 일했던 분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생각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을 그분들. 한 분 한 분 존경할 만큼 대단한 일들을 하고 계셨는데, 나는 이제야 그들의 전문성을 이해하는 듯하다. 


나는 그 작은 회사에서 의상제작 전체과정을 경험했고, 그곳에서 일하는 성공자들의 작업을 지켜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큰 그림으로 일을 진행하는 방법들, 그것도 고수의 기준으로 일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소중한 경험을 통해 배웠으면서도, 나는 그동안 이를 잊고 지낸 듯하다. 


과연 나는 그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과연 나는 1인 기업가로서 고수일까. 다른 고수들과 일할 때 그들만큼의 소통을 하고 있는 걸까.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 부족한 점이 생각났다. 어쩌면 나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큰일이다 싶었다. 그 부분부터 채워야겠다. 





* 썸네일 이미지 - G 회사에서 가져왔다. 아직도 일하고 계시네.


감기몸살로 인해, 이틀 동안 발행이 늦어졌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평소대로 새벽 5시 발행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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