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을 앞두고, 난 일본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행기표까지 모두 예약을 한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내가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의 부띠끄에서 막내디자이너를 뽑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인이 그 브랜드의 백화점 매장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그 정보는 100% 확실한 것이었다. 패션쇼 15일 전, 막내 디자이너가 그만둬서 15일간만 임시로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패션업계에서는 적어도 top 10위 안에 드는, 나의 기준으로는 top3에 드는 디자이너의 부띠끄인데,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날로, 이력서를 써서 전달하고, 다음날 면접을 보고, 그다음 날부터 바로 출근을 했다.
학교 수업도 빠져가며, 막내 디자이너로서 15일 동안 패션쇼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첫날은 어리바리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디자인실 팀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틀째부터는 나는 바로 프로가 되어야 했다. 팀장은 너무 바빠서 나를 챙겨줄 여유가 없어 보였다. 그곳에서 몇 개월, 몇 년을 일한 사람처럼 나에게 주어진 일을 모두 나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심지어, 나는 눈치껏, 여기저기 물어가며, 나 혼자 내가 할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고, 그러면서 동시에 혹시라고 내가 저지르는 실수로 모든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 때문이었다. 그 당시 엄청 긴장하며 일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독하게 일한 후 겪었던 첫 번째 패션쇼의 현장.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락의 최고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이렇게 자극적이고 성공의 뿌듯함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싶었다. 지옥에서 바로 천당으로 순간이동한 기분이었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기억은 한순간에 와르르 사라지고, 바로 다음번 패션쇼를 기다리는 나를 발견했다. 완전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15일간의 알바기간을 끝내고, 나는 그곳에서 3개월의 수습기간을 더 갖기로 했고, 자연스레 일본 유학은 나의 삶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4년을 더 그곳에서 일하면서 패션 디자이너라는 경력을 얻게 되었다.
2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그때의 장면들이 기억나고, 그때의 감정들이 여전히 나에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나의 인생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험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를 이 브러치북에 1주간에 담으려 한다.
THE ME + KUNAH
더미그나는 나 자신(the Me)을 삶의 주제 (theme)로 삼고, ‘나'를 제대로 지켜내고자 탄생한 브랜드입니다. from. 근아 / 그나
THE ME KUNAH 디자인 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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