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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ul 03. 2024

자연의 흐름대로 산다는 것은,

요 며칠, 머릿속이 마치 소용돌이치는 바다처럼 혼란스럽고, 복잡해서 숨이 가쁠 만큼 분주했다.


잠조차도 나의 마음을 알아차린 걸까? 날 기다리는 창조물들은 꿈속에서까지 그 일들을 해결하라고 나를 독촉했고, 다시 나를 30분마다 깨워 꿈속의 일을 현실로 만들라고 다그치는 듯했다. 잠결에 무의식적으로, 반자동적으로 꿈속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글로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겨놓고, 사진으로 찍어놓고. 정말 하루종일 뇌가 쉼 없이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무엇인가 거대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았기에,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고, 결국 잠이 부족한 것도 무시한 채 살았었다.



 


월요일. 오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그 조용하고 평온한 시간 속에서, 나는 소파에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30분쯤이 흘렀을까. 분명, 잠에서 깨어났는데, 나의 몸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들숨과 날숨이 오갈 때마다 나의 몸은 아주 천천히 나에게 에너지를 쌓아주고 있었다. 내 몸이 하는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다시 자는 척 그 상태 그대로 한참을 누워 있었다.


하루종일 이렇게 쉬고 싶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에너지가 다 쌓일 때까지 에너지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알림이 울렸다. 웬만해서는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인데, 무슨 일인지 신경이 쓰였다. 채팅창을 열었다. 깊은 곳에서의 사유(思惟)를 마치고, 나에게 전달되는 오늘의 생각이었다. 궁금함에 더 깊은 대화를 해보고 싶었지만, 나의 뇌가 작동하지 않았다. 아무런 리액션도 못한 채 한참을 채팅창만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 '나는 주말 동안 너무 많은 생각을 했어. 그래서 지금 나는 쉬는 중이야' 나의 느린 생각에 대한 상황을 설명했고 다시 나는 휴식에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 쉬고 나니, 에너지가 어느 정도 충전된 것이 느껴졌다. 아, 나에게 번아웃이 온 거였구나.


다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정신의 에너지가 충전되었을 때, 아까 완성하지 못한 채팅 속의 대화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부족한 정보는 검색하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해 그의 깊은 사유를 이해하며, 생각을 재정리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다시 그에게 전달했다. 돌아오는 반응은, "그래~ 그래서 내가 그동안 그렇게 이야기한 거야."


모든 것이 퍼즐처럼, 아니 그보다 빠른 자석퍼즐처럼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이날의 오전은, 자연의 느린 속도에 맞춰 흘러갔다. 이 날의 대화도 '자연의 흐름대로 나의 행동도 자연스럽게 행해야 한다'는 주제였다. 그날 밤. 나의 삶의 속도가 자연의 속도로 느려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동안, 호주에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한국의 속도로 살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 느낌상으로는 1/10만큼의 속도로 느려졌다. 어쩌면 1/100일 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속도가 정지된 느낌이었으니까.





그리고, 어제 오전,

나의 머릿속은 편안해졌다. 호주인들의 여유로운 느긋함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고, 내가 좋아하는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즐기던 자연의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왜 인위적인 노력보다 자연스러운 창의성을 중시했는지 모든 것이 연결되며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게으름뱅이 소녀가 된 것처럼, 삶의 속도도 느려지고 차분해지고 잔잔해졌다. 아무리 속도를 내어 일을 하려 해도, '내 안의 나'가 반항하며 버티고 있었다. 서둘러 일을 처리해주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뭐가 있나 싶은 반응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싶었다. 그래서 그 게으름뱅이 소녀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신기한 것은, 어느 때보다 더 깊은 생각을 했고, 더 연결된 대화를 했고, 더 생산적인 일을 했고, 더 솔직해진 삶을 산 듯했다. 때론 부족한 것이, 미운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길로 안내하듯, 게으름이 현명한 옷을 입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게으름은 분명 날 현명하게 이끌었으니까.





어제저녁, 소로의 책에서 발견한 문구.


"9월 17일, 현명한 이의 휴식,

자연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늘 속도가 일정하다. 싹은 마치 짧은 봄날이 무한히 길기라도 하듯이 서두르거나 허둥대는 일 없이 서서히 싹튼다. 자연은 무엇이든 자신이 하는 일 하나하나에 지극한 공을 들인다. 마치 유일한 목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중략) 지는 해가 마지막 남은 하루를 잘 마무리하라고 당신을 재촉한다고 여겨진다면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라. (중략) 현명한 사람은 늘 마음이 고요해서 들뜨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한 발자국 걸음을 내딛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산책자의 모습과 같다. 반대로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피로가 축적돼 몸이 쉬라고 강요하지 전까지는 다리 근육의 긴장을 풀지 않는다. "


나는 지금, 현명하지 못한 사람에서 현명한 사람으로 넘어가는 중인가 보다.







자연의 속도로

나의 일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어느 때보다 안정되고,

언젠가 꽃이 핀다는 믿음이 강해졌다.

아니, 그건 사실이 된다는 걸 이미 마음속 깊이 알고 있다.  

의심할 필요가 없다.


자연의 흐름대로 산다는 것은,

나를 느낀다는 것이다.


자연의 흐름대로 산다는 것은,

내가 나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내가 내린 결론이고,

내가 만든 나만의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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