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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ul 10. 2024

동화 작가와 일러스트 작가 사이

서로 다른 생각, 서로 같은 생각

동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끊임없다. 최근, "동화에 대한 나의 사랑"이라는 글을 쓰면서 헬렌의 자서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책값이 5만 원에 가까웠고, 배송도 2주나 걸린다고 했지만, 망설임 없이 바로 구입했다.


이 책이 도착한 날부터 어제까지, 나는 다시 동화 일러스트에 빠져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동안 불쑥 찾아오는 영감도 없었고, 그동안 그린 내 그림을 보면서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잠시 멈춰 서 있었다. 더 깊은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일부러 멈춘 것도 아니고 어느새 우선순위에서 조금 미뤄졌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나의 그림을 기다리던 다니엘은 "미루는 것", "완벽주의"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그동안 내 작업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했다. 나는 일부러 미룬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잘 그리려 한 것도 아니었다. 나의 생각이 좀 더 정확하게, 깊게 담기길 바랐던 나만의 고민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으니, 그가 그렇게 생각한 것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이 안타깝고 후회스러워도,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나는 그 사이, 글, 그림 그리고 독서에 좀 더 집중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글 쓰는 실력이 조금씩 바뀌면서 한 단계 올라간 것이 느껴졌고, 글 쓰는 부담도 정점 덜해지면서, 글쓰기가 재미나졌다. 그러다 보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마음적 여유도 생기고, 시간적 여유도 생기니, 2-3주 동안 많은 그림을 그린 듯하다.


또한, 좀 더 깊은 공부에 대한 갈증이 심했는지, 나는 어느 날 <도덕경>을 읽으며 나에게 필요한 의미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주말 동안 <월든> 500페이지의 절반을 읽으면서, 나의 철학을 나의 창작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그리고, 다시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한 날, 나는 그림 그리는 '생각의 과정'이 달라져 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린 동화 한 편의 초안 일러스트를 완성해서 다니엘에게 전달했다. 돌아온 반응은 "beautiful"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피드백은 조금 달랐다. 다니엘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나의 그림이 조금 어긋나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변경이 가능하겠냐고 물었고, 나는 흔쾌히 그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은, 다니엘과 내가 함께 일러스트를 발전시키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BOUNCE". 서로 통통 튀겨가며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우리는 즐기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어젯밤 완성된 그림은, 훨씬 깊은 생각을 담고 있고, 다니엘과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으로 발전되어 있었다. 그리 완벽한 그림이 아님에도, 만족스러웠다. 이 모든 과정이 만족스러운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젯밤, 헬렌의 자서전을 다시 읽어보았다. "We're  Going to a Bear Hunt"의 작가의 인터뷰를 다시 천천히 읽게 되었다. 그는 '고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처음에는 헬렌의 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책이 출판될 때까지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책이 출판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그는 헬렌이 가졌던 일러스트의 의도를 그제야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왜 헬렌의 그림이 왜 아름다운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헬렌의 그림을 그 동화 작가가 처음부터 좋아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작업은 얼마나 재미있고 흥분되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읽으며 그것이 아니라, '고백'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할 만큼 그는 출판 전까지 그리 즐거운 과정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글을 쓰는 다니엘과 일러스트를 그리는 나, 우리의 과정을 돌아보았다. 가끔은 서로 다른 생각으로 깊은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가끔은 같은 생각으로 작업 속도가 붙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낙오되지 않고, 길을 잃지 않고 한 방향을 향해 잘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감사함을 느낀다.


헬렌의 자서전을 위한 인터뷰에서, 그는 당당하게 자신은 그녀의 그림이 처음에는 싫었다고 고백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헬렌과 작가 사이의 두터운 믿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갈등의 과정을 겪으면서 생겨나는 새로운 신뢰가 더 단단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헬렌이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니, 지금 나의 과정은 천국 낙원과 같다고 느꼈다. 10개의 일러스트 중 9개를 좋아해 주니 말이다. 사실, 이제는 모든 일러스트를 좋아해 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다른 이들을 통해 바라봐지는, 나의 그림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 더 즐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헬렌은 1962년부터 동화 일러스트 작업을 시작해서, 현재 86세의 나이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 나이보다도 긴 기간을 동화 일러스트에 바친 헬렌의 글을 보며, 나의 시작점을 기록하기 위해 여기에 글을 쓴다.


2024년. 7월.


이곳에 적히는 모든 글을 모아 나중에 자서전으로 남길 수 있는 그런 '위인'이 되고 싶다. 위인전을 꿈꿔봐도 되지 않을까? 모든 이에게 내가 위인일 수는 없겠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질 엄마의 삶과 글과 그림은 위대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일을 하고 있다. 글쓰기.



헬렌의 자서전에 담겨 있는, 에머슨의 글이다.

"To be yourself in a world that constantly trying to make you something else is the greatest accomplishment"


"당신을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세상에서,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은 가장 큰 성취입니다."










다니엘 : https://brunch.co.kr/@maypaperkunah/300

https://brunch.co.kr/brunchbook/themekunah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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