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 한 권을 나를 위해 구입한다.
아들이 볼 수 있는 곳에 툭하니 던져 놓는다.
아들이 지나가다 내가 새로 사놓은 책을 발견한다.
책에 뒤적뒤적 관심을 보이다가, 어느새 조용해진다.
숨기고 싶은 나의 의도를 들킬까 봐, 나는 조용히 기다린다.
아들은 말없이 사라진다.
나도 말없이 기다려준다.
어느새 아들의 불편하고 복잡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면, 나의 마음도 함께 편안해진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아이들의 행동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육아지침서 같은 것을 찾아보기보다는, 집에 있는 동화책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매일 밤 그 책들을 아이들에게 읽어줬다.
편식하는 아이를 위해,
한 가지 음식만 먹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양한 음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도 하고,
두려움이 많은 아들에게,
두려움과 이겨내는 어드벤처 이야기를 들려주며
주인공과 함께 용과 싸우기도 하고,
친구 사귀는 것에 어려움이 겪을 때는,
친구를 처음 사귀어보는 상어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들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의도는 모른 채 세상을 자연스럽게 알아갔다.
어느 육아 지침서보다 효과가 컸다.
가끔은 아이들 옆에서 끄적끄적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이 엄마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 나는 은근슬쩍 아이들에게도 함께 그림 그리기를 제안한다. 그렇게 한참을 그림을 그리다가, 어느 정도 아이들이 그림을 완성하면, 나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 가끔은 아이들도 나에게 질문을 해오기 시작한다.
그때가 우리만의 진지한 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우리만의 토론시간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림과 대화를 통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우리만의 해결방안을 찾곤 한다. 그러다 보면, '그림과 대화'. 우리만의 동화가 만들어진다.
요즘은 나를 위한 동화책을 구입한다. 이제 10살이 되는 아들은 동화책을 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나를 위해 동화책을 구입한다. 그림과 글과 그림을 좋아하는 엄마가 동화책을 사는 것은 아이들에게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니 다행이다.
내가 동화책을 구입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동화책을 통해 지혜를 얻고 싶어서다. 동화책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많은 교훈들이 글 속에 담겨 있고, 스스로 생각할 힘도 일러스트 속에 숨겨져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을 위해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어른인 나도 동화를 읽으며 성장하고 있었다는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을 다스리고,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렇게 '엄마인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고른 동화책중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가만히 들어주었어]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오래간만에 책을 꺼냈다.
요즘 나의 성장에 집중하고 있으면서
다시 이 동화책을 읽으니,
또 다른 시점으로 읽혔다.
한참을 멍하니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에는 내가 아들에게 토끼였는데,
이제는
나를 기다려주는 저런 토끼가 나에게도 있는데.
그래서
Thank you for being there.
내가 항상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말인데..
그 모든 마음이 이 그림 하나에 담겨 있었다.
'나도 이런 동화책을 만들고 싶다.'
더 간절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rBjAWkog9n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