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페이퍼 ㅣ 호주가 준 선물 ㅣ 01
징글벨, 루돌프, 산타클로스. 아들 학교의 화려하고 흥겨운 뮤직밴드 연말행사가 끝났다. 무대에서 신나게 베이스 기타 공연을 마친 아들은 어디론가 또 쏜살같이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들은 벌써 저 멀리 잔디밭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이를 시작한 듯 보였다. 아들은 친구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가면 -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들에게 끌려가면 - 그제야 나에게 나타날 것이다.
나는 혼자 운동장 한 구석에 앉았다. 나도 내 친구를 찾았다. 다이어리를 펼치고, 오늘을 기록하기로 했다.
그래,
마음껏 뛰어라
마음껏 굴러라
마음껏 웃어라
마음껏 소리 질러라.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잔디밭 운동장!
아들 학교의 잔디밭은 언덕 그자체다! 자연속에 학교가 있다.
왜 잔디밭을 언덕으로 남겨 놨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 잔디밭이 평평했다면 재미도 평평했을 것이다. 호주에선 자연이 최고의 놀이터다. 이 공간엔 자연과 아이들 뿐이다. 이곳 아이들은 자연을 가지고 노는 방법을 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자연이 그들의 장난감으로 변하고 있다. 내 아들만 봐도 그렇다.
나뭇잎 하나가 부메랑이 되어 하늘로 던져지면, 팔랑팔랑 나부끼는 부메랑에 여러 아이는 차례로 쓰러진다. 한 아이는 나무 위로 올라타서는 망을 보며 소리친다. 해적이다~! 어느새, 아이들은 해적 선원이 되어, 나뭇가지 하나씩 집어 들고 해적의 칼을 휘두른다.
나무를 흔들어 댄다. 아직 덜 익은 초록색 도토리들이 두두두두 떨어지면, 총알이 된다. 아이들은 도토리를 그들의 주머니에 주워 담고, 총놀이인지, 수류탄 놀이인지 알 수 없는 전쟁놀이를 한다. 갑자기 아이들이 하늘을 보며 뛰기 시작한다. 하늘에 나타난 새와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것이다. 참 아이들은 예측 불가다.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속에서, 내 발에 신겨져 있는 까만 것이 낯설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뛰고 있는 잔디밭으로 나도 들어가 걸어봤다. 잔디밭이 이렇게 푹신한지 몰랐다. 푹식푹신한 카페트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어느 아이가 와서 잔디밭 위에 눕는다. 그리고 구르기 시작한다. 그치! 저런게 노는거지. 나도 구르고 싶다. 저들처럼. 그럼 모든 자연이 뒤엉키겠지. 하늘과 나무와 잔디밭 그리고 내가 돌돌 말려지면 좋겠다.
또 한 아이가 와서 눕는다. 그리고 한참을 하늘을 보며 누워있다. 참 여유로워 보인다. 아하! 저렇게 하늘을 보는 거구나! 밤이 되면, 저렇게 누워서 별을 보면 좋겠다 싶었다.
다들 분주하게 집에 갈 준비를 하니, 어둠이 찾아온다. 아이들이 떠나니, 자연도 자신의 빛을 잃었나보다. 우리 아들은 어둠을 업고 저 멀리서 나에게 다가온다.
내 앞까지 걸어온 아들.
그의 웃는 모습이 자연의 빛보다 환하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웃음을 가졌을까.
이런 아이가 내 아들이라니.
아이다.
이런 게 아이지.
눈은 이미 반달이고, 벌걸게 달아오른 볼도 히죽히죽 웃고 있고, 잔디밭에서 굴러댄 머리카락도 배시시 부시시 웃고 있는 듯했다. 이제 다 놀았으니 집에 가도 좋겠다는 말을 아들의 웃는 모습이 하고 있다.
네가 웃으니 나도 함박웃음이다.
오늘 하루 행복했다.
그치?
아들과 손잡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아들의 행복감이 느껴진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행복함이 느껴진다.
토요일 16일, <호주에서 받은 선물> 2편이 이어집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메이페이퍼]들입니다
화 / 금 - <나의 삶에는 동화가 있다> 연재
수 / 토 - <호주에서 나는 5살이다.> 연재
목 - <정근아 우화집(가제)> 연재
매달 12일 <메이페이퍼의 브런치 성장일지> 매거진 발행
<메이페이퍼의 영어버전>매거진 발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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