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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Oct 01. 2024

돌보지 않았던 정원, 내가 잘한 것일까?

정원에서 머무른 1시간

지난주, 집을 오갈 때마다 내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 송이의 장미였다. 작년에 이사 온 후 마당 한편에 자리 잡은 장미나무였지만, 그동안 이렇다 할 생명의 기운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존재감을 감춘 듯 조용히 그 자리에 있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힘차게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는 줄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꽃봉오리가 맺힌 것을 보며 나는 무심코 지나칠 수 없었다. 과연 어떤 색의 장미가 피어날까? 그 작은 변화가 나의 기대를 자극했고, 기다림의 설렘은 어느덧 내 마음을 차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살짝 벌어진 꽃잎 사이로 드러난 색은 은은한 핑크였다.


일요일 새벽, 그 장미를 더 자세히 보러 나섰다. 놀랍게도, 그 장미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나무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장미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한 모습으로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죽어버린 것처럼 보였던 주된 기둥은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그 아래 땅속 깊은 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세 개의 건강한 줄기가 메인이 되어 그 자리를 차지했고, 마당 곳곳에서 또 다른 장미 줄기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내가 눈으로 본 것은 죽어가는 나무의 기둥뿐이었지만, 땅속에 뻗어 있던 뿌리는 온 정원으로 퍼져나가며 생명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장미뿐만이 아니었다. 작년 여름,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 또 다른 꽃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를 지켜보며 결국 나는 가지치기를 결심했다. 나무의 부피를 원래 크기의 1/4로 줄이는 결정을 하면서도, 사실 나는 스스로도 불안했다. 과연 내가 잘한 것일까? 혹시 나의 손길이 나무를 더 약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나무를 잊은 채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무는 빗물을 흡수하고, 햇살을 받아들이고,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자라나고 있었다. 내가 전혀 돌보지 않았는데도, 나무는 가지치기 이후의 크기에서 열 배는 더 커져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나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나 있었다.


정원을 둘러보며 내 안에서 일어나는 물음들이 있었다. '잠시나마 보살핀 내 정성이 결실을 맺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1년 동안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둔 덕분이었을까? 자연 스스로의 힘으로 자란 것일까?' 어떠한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꽃나무들은 자신만의 제자리를 찾아갔을 뿐 아니라, 더욱 크고 화려하게 자신들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나에게 자연의 진리, 그리고 생명력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듯했다.


내가 정원에 나가 1시간을 보내는 동안, 바라본 것은 내가 1년간 방치했다고 생각했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그들만의 원리대로 자라난 야생의 정원이 되어 있었다. 내가 손수 잡초를 뽑고, 약을 뿌리며 정성을 쏟았던 시간보다도 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자란 꽃들, 내 무릎 높이까지 자라난 작은 나무들이 이제 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내가 심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만들지 않은 정원이었다.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리 잡은 정원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은 나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자연은 내가 손대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며, 나의 간섭이 없을 때 오히려 더 건강하고 풍성하게 자랄 수 있었고, 그것이 자연의 이치인 듯하다. 


그들은 그들만의 시간과 방식을 통해 성장하고 있었다.





ㅡㅡ

또한, 정원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믿음’에 대한 생각이었다. 내가 장미나무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것은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메말라버린 가지와 생명의 기운을 잃은 듯한 모습은 그야말로 끝을 의미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나무를 뽑아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내 안에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꽃을 피우리라는 확신이라기보다는, 이 나무가 여전히 뿌리 깊은 곳에서 생명을 지켜가고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였다.


믿음이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 죽어있는 듯한 나무가 사실은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고 있듯이, 내가 가끔은 실패하거나 좌절할 때도 내 안에는 여전히 잠재된 힘과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 장미가 결국 그 화려한 꽃을 피웠을 때, 그것은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 믿음의 결과였다.


또 다른 나무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나무는 나의 의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히려 더 강하고 큰 모습으로 자라났다. 그 나무는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믿음은 때로는 의심을 품으면서도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며, 그 기다림의 끝에는 기대 이상의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장미나무와 가지치기한 나무 모두는 내가 당장 돌보지 않았음에도, 혹은 오히려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 자연스럽게 자신의 힘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일은 그저 믿고 기다리는 것이었고, 이 또한 자연의 이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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